[박명인 미학산책] 인문주의자의 미학 Ⅲ
피코의『인간에 관한 연설』(1486년)은 ‘르네상스의 가장 고귀한 유산이다’라고 브루크하르트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존엄으로 여겨지고 그 근저로 의지 행위의 자유가 강조된다. 그리고 이 자유는 항상 불안과 마주치게 된다. 피코에 의하면 신은 우주 창조 때에 또 다른 모든 존재에 각각 고유의 거처나 모습이나 역할을 주었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에 의해 자기의 본질을 정하는 것만을 허용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의 의지에 의해 짐승에게도 천사에게도 신과 일치하는 것조차 가능한 것이었다. 피코의 이러한 견해는 인간과 세계는 이데아나 신의 존재에 의해 일의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어떤 생성 과정 또는 형태로 간주하는 것으로 통한다. 이 생각은 현상의 생성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오늘의 클라게스의 이론과도 가깝다. 〈Vgl. L.Klages, Grundlegung der Wissenschaft von Ausdruck, 7Auf, 1950 perpeet, das Kunstschne, S. 132f.〉
레오나르도의 해부학 습작이나 대홍수의 비전에는 이러한 유동적인 현실과 다양한 국면에 대한 강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피코는 또한 인간은 모든 사물의 척도를 스스로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알베르티의 건축가에 관한 견해는 피코의『인간에 관한 연설』의 주석에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알베르티는 새로운 건축가에게 중세의 신과 같은 창조자이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상 인문주의자는 미를 예술미에 한정하지 않고, 이교적 고대 그리스도교 중세의 미의 이론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피치노의『플라톤의 향연 사랑에 대해서』에서 용이하게 볼 수 있지만 검증하기 어려운 사고의 극한에 까지 이르렀다. 인문주의 운동은 어떤 예술미학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미 개념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상이나 자유로운 의지 행위에 근거하는 새로운 인간존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상의 고찰로부터 예술미의 기원을 종교적 구속성의 소멸에서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것도 명확해진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결코 그리스도교 신앙에 적대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신앙은 조형예술가에 있어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르비노공의 궁전에 성스러운 교회와 무사들에게 바치는 신전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은 그 상징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야말로 미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에 입각해서 교화되어 눈의 즐거움에 양식화되려고 한 것이다.
두뇌의창조와손의창조두뇌와손이라는개념은인간의창조활동에서두뇌에대부분맡겨져있는것과손의역할이크다는유형적인구분에대응하는것이라고볼수있다. 학자나발명가의일은대부분두뇌만으로경영되고있다고생각되고, 반대로조형미술가의제작과정의대부분은손에의해이루어지고있다. 음악의경우에는이두가지일이분업의형을취하여작곡가의두뇌와연주가의손이더불어음악예술을만들어낸다.
이두가지창조에서이론적으로보아해명이충분한것은두뇌창조이다. 왜냐하면, 손의창조는머리와손의두가지계기가존재하고그양자의관계에서설명가능성이보이지만무의식적인준비의단계를인정한착상은일거에나름대로여전히신비한채로남겨져있다. 여기서주목해야할것은이두뇌의창조, 창조적인사고에관한이론에서일종의피드백의메커니즘이존재한다. ‘창조적사고(創造的思考)’, 즉단적인두뇌의창조를몇몇학자들은다음과같은정의를제출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