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뉴욕 패션 위크(NYFW)는 오랫동안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상업적인 행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파리의 세련미나 밀라노의 극적 연출과 비교하면, 뉴욕은 늘 ‘실용적’이라는 딱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 몇 년간은 단순히 일정표에 이름을 올리는 행사로 전락했다는 비판마저 따랐다. 그러나 이번 2026 시즌은 달랐다. 런웨이 위를 넘어 미술사의 거대한 흐름이 패션과 만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라우센버그의 탄생 100주년, 프랑켄탈러의 색채 실험, 로베르시의 사진적 환영은 패션을 단순한 의복 소비의 차원을 넘어 예술적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제이슨 우는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 무대를 라우센버그의 거대한 쇼케이스로 바꾸었다. 무대에 설치된 반투명 패널은 모델들의 몸을 굴절시키며 살아있는 콜라주를 만들어냈다. 그의 컬렉션은 단순히 라우센버그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추구했던 이미지의 불안정성과 겹침을 현대 패션 언어로 재구성한 실험이었다. 패션이 예술을 장식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방법론을 빌려 자기 변화를 시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울라 존슨은 쿠퍼 휴잇 디자인 뮤지엄을 무대로 삼아, 프랑켄탈러의 색채를 런웨이에 풀어냈다. 모델들이 걸어 나올 때 흘러나온 프랑켄탈러의 목소리는, 패션이 예술의 본질적 화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상징했다. 옷 위에 색채가 단순히 얹힌 것이 아니라, 추상표현주의의 흐름이 실루엣으로 변환된 순간이었다. 다가올 MoMA의 프랑켄탈러 대규모 회고전을 예고하는 문화적 ‘예열’이기도 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파올로 로베르시의 회고전이었다. 첼시의 페이스 갤러리에 열린 그의 전시는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사진이 패션의 순간을 넘어 예술사의 일부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었다. 로베르시의 부드럽고 흐릿한 빛의 초상은 수십 년간 패션 이미지를 정의해 왔고, 이번 전시는 패션계가 그를 다시 예술가로 호명하는 자리였다.
패션과 예술의 만남은 이제 단발적 협업을 넘어 제도적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FIT 박물관의 전시 「복장, 꿈, 그리고 욕망: 패션과 정신분석」은 패션을 심리적 무의식의 기록으로 해석했다. 라캉과 프로이트의 이론 속에서 샤넬과 맥퀸이 새롭게 읽히는 순간은, 패션이 단순히 시장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와 정신을 반영하는 매개체임을 일깨운다.
NYFW 2026은 패션이 여전히 소비와 상업성에 매몰된 행사가 아니라, 예술과 대화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라우센버그의 콜라주, 프랑켄탈러의 색채, 로베르시의 사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런웨이를 넘어섰고, 패션을 다시 문화적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한국 미술계 역시 이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예술과 패션의 협업은 단순한 스타일링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생명력을 사회와 연결하는 새로운 언어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시작된 이 대화는 곧 세계를 거쳐 우리에게도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