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카를 하르퉁(1908–1967)은 독일 근현대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로댕과 마이욜, 그리고 고대 에트루리아 조각의 조형 언어를 학습하면서 출발했으나, 나치 시대라는 암울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기존의 전통적 조각가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1935년, 그는 첫 추상 조각을 시도하며 인간 형상에서 분리된 새로운 조형 언어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후 독일 조각을 대표하는 독창적 궤적이 되었다.
하르퉁의 조각은 표면적으로는 추상적이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인간과 자연에 대한 감각적 접근이 흐른다. 그는 작품 제목에서조차 단순히 "여인" 혹은 "아이"라 지칭하기보다, 그것을 '식물적 존재', '유기적 형태'로 불러내며 생명체가 지닌 본질적 힘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점에서 그는 루돌프 벨링, 오토 프로인틀리히가 열어놓은 독일 추상 조각의 계보를 잇되, 더욱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감각을 부여한 후속 세대라 할 수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Sitzende mit Kind'(1938–1939)는 청동의 묵직한 질감을 통해 모성과 인간 본연의 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193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단순한 인체 표현을 넘어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에 대한 증언이었다. 매끈하면서도 흐르는 듯한 표면은 단단한 물질 위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었고, 이는 이후 그의 여성 누드 연작이나 머리, 동물 형상으로 이어지며 일관된 주제를 구축했다.
전후 독일에서 하르퉁은 단지 한 명의 조각가를 넘어 문화 재건기의 상징적 존재였다. 1951년 베를린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부임한 그는 독일 현대조각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며, 수많은 제자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은 형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인간의 근원적 모습을 탐구했으며, 이는 독일이 다시 세계 예술 무대에 설 수 있는 정신적 지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하르퉁의 작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조각은 인간의 육체나 자연 형상을 직접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숨은 원초적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오늘날 환경·생태적 관점에서 다시금 읽히며, 예술이 단순히 형상의 모방이 아니라 생명과 존재를 직관하는 도구임을 증명한다.
카를 하르퉁은 결국, 20세기 독일의 불안정한 중심에서 "예술적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개척한 조각가였다. 그의 청동 조각은 단순한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과 인간의 생명력, 그리고 추상과 현실을 잇는 다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