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근혜갤러리 특별전 2부, 젠 박·첸 루오빙·곽인탄이 보여주는 확장된 조형 언어
- 9월 15일(화) ~ 10월 4일(토)까지 공근혜갤러리

공근혜갤러리 외관. 2025.09.15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외관. 2025.09.15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공근혜갤러리가 9월 15일부터 10월 4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2부는 단순한 기념 전시가 아니라 한국 동시대 미술의 궤적을 다시 짚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2005년 사진 전문 갤러리로 출발한 이후, 2010년 삼청동 청와대 인근으로 이전하며 회화·조각·영상·설치 등 매체를 확장해온 흐름을 응축한 전시라는 점에서 이번 기획은 '사진 이후의 시선'을 조망하는 의미를 갖는다. 참여 작가는 공근혜갤러리와 오랜 시간 협력하며 각자의 독창적 조형세계를 구축해온 젠 박(Jen PAK), 첸 루오빙(Chen Ruo Bing), 곽인탄(Kwak Intan) 세 명이다. 이들은 세대·지역·조형 언어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니면서도, 공통적으로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매체와 경계의 확장'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첸 루오빙).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첸 루오빙).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첸 루오빙: 동양적 사유와 서구 미니멀리즘의 접합

첸 루오빙은 1970년 중국에서 태어나 1992년 독일로 유학, 뒤셀도르프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다. 그의 작업은 동양 도가 철학의 '무위(無爲)'와 서양 미니멀리즘의 절제를 융합한 색면 추상으로 정리된다. 정제된 색면은 화면 전체를 균질하게 채우면서도, 미묘한 색의 진동을 통해 시간성과 명상성을 내포한다. 관람자는 그 앞에서 '무엇을 보았는가'보다는 '어떻게 보는가'라는 행위 자체를 사유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전시에서 첸은 주로 단색의 층위를 강조하며 ‘비움의 미학’을 실험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더 다층적이고 깊어진 색의 레이어가 포착된다. 이는 2024-2025년 티파니와의 아트 콜라보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시도한 새로운 색채 실험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상업 브랜드와 협업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명상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은 동시대 추상회화가 소비사회와 긴장 속에서 어떻게 새로이 생명력을 획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미술 시장에서 첸 루오빙은 이미 2007년부터 공근혜갤러리를 통해 꾸준히 소개되어 왔으며, 현재는 '중국 현대 추상의 대표 작가'로 안정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작품 가격 또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중견·국제 컬렉터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젠박)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젠박)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젠박)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젠박)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젠 박: 레고적 구조와 내적 풍경으로의 전환

젠 박은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젊은 세대 작가로, 레고 블록을 모티프로 한 대담한 색채와 유희적 설치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전 전시들에서 그의 작업은 도시 외부 풍경이나 일상의 구조물을 '쌓기'와 '해체'의 과정을 통해 재해석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2023년 포르쉐코리아와의 협업은 대중적 인지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2024년 박서보재단 소장으로는 한국 미술 제도권에서도 그의 예술성이 공인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2025년 신작은 이전과 뚜렷한 전환을 보여준다. 레고적 모듈 구조는 유지하되, 외부의 도시 풍경이 아닌 '내부의 풍경'을 상상해낸다는 점에서다. 이는 유희적 표면을 넘어, 작가 개인의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집단적 무의식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블록들이 만들어내는 구조는 단순한 놀이의 장치가 아니라 '내면의 방'을 구축하는 장치가 된다. 젠 박은 MZ세대 특유의 역동성과 대중문화 감각을 활용해 미술과 소비,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며, 이는 국내외 컬렉터들에게 '차세대 글로벌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곽인탄).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곽인탄).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곽인탄).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곽인탄).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곽인탄: 유년의 기억에서 조형 언어의 실험으로

곽인탄은 회화·드로잉·조각·설치 등 매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적 작업으로 MZ세대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업은 유년기의 기억, 작가로서의 자의식, 재료의 물성 탐구를 유희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변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전시에서는 '놀이적 조각'의 면모가 강조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과 설치가 회화적 감각과 결합하며 새로운 조형 언어를 제시한다.

 

특히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더욱 섬세해졌는데, 이는 북서울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의 초청 전시를 거치며 공적 담론 속에서 '실험적 조각가'로 자리잡은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곽인탄은 '재료-기억-자의식'을 삼각축으로 삼아 전통 조각의 범주를 해체하고, 오히려 조각을 '놀이와 실험의 장'으로 재구성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도 그의 실험적 태도는 점차 가치화되고 있으며, 주요 공공미술관의 소장과 전시를 통해 신뢰를 확보한 만큼, 향후 30대 작가군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곽인탄).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공근혜갤러리 20주년 기념 특별 전 2부 '시선의 확장'(곽인탄). 2025.09.15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세 작가의 이번 전시가 가지는 차별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매체 확장의 궤적이다. 사진 전문 갤러리로 출발한 공근혜갤러리가 지난 20년간 회화·조각·설치로 스펙트럼을 넓혀온 과정이 이번 전시에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첸 루오빙의 색면 추상은 사진이 지닌 '빛과 시선'의 문제를 확장한 것이며, 젠 박의 회화·설치는 사진적 기록을 해체하여 구조화하는 시도로 읽힌다. 곽인탄의 조각은 사진적 재현의 틀을 넘어, 재료와 공간 자체를 새로운 이미지 생산의 장으로 전환한다.

 

둘째, 세대와 지역의 교차이다. 독일을 기반으로 한 중국 출신 첸 루오빙, 뉴욕과 서울을 오가는 젠 박, 국내를 무대로 성장한 곽인탄은 각기 다른 세대적 배경과 지역적 기반을 지니면서도,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경계 해체'라는 과제에 공명한다. 셋째, 시장성과 예술성의 균형이다. 티파니, 포르쉐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한 첸과 젠 박, 공공미술관 전시에 집중한 곽인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성과 시장성 사이의 접점을 탐색한다. 이는 단순히 개별 작가의 성과를 넘어, 한국 미술시장이 지향해야 할 다층적 모델을 보여준다.

 

공근혜갤러리 개관 20주년 특별전 2부는 단순히 갤러리의 역사를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난 20년간 동시대 미술이 어떻게 매체를 확장하고 세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시장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첸 루오빙, 젠 박, 곽인탄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공근혜갤러리라는 플랫폼 안에서 '사진 이후의 시선'이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공근혜갤러리가 동시대 담론의 장으로서 여전히 유효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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