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인문주의자의 미학 Ⅱ

‘인간은 자연의 가장 기묘한 형성물이며 모든 피조물 중 최선의, 동시에 최악의 피조물이다’. 인간이 비참한 것은 죄에 의한 것이어서, 죄는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비참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완전히 인식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완전한 욕구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F Petrarca, Secretum, Prose, 1955, p.28, 196 사토미쓰오『르네상스에 있어서의 인간의 존엄』 (有信堂, 1981년)〉

[박명인 미학산책] 인문주의자의 미학 Ⅱ
[박명인 미학산책] 인문주의자의 미학 Ⅱ

   페트라르카는 이 욕구를 명예와 명성을 얻으려는 욕구라고 생각했다. ‘인간적 명예로 나는 충분하다. 그것이야말로 나는 동경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되어 영원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F Petrarca, Secretum, Prose, 1955, p.28 196 사토미쓰오 전게서 93쪽)〉

   페트리르카는 이 명예를 요구하는 욕구는 창조주에의 사랑과 영원한 영광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고귀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성인(聖人)보다도 시인을 선택했다. 시인이 시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명예이며 영생불사를 목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페트라르카는 아비뇽(Avignon)에서 가까운 반트산에 오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정상에 올라 발아래 흐르는 구름을 기록했다. 

브루크하르트는 여기에서 풍경의 아름다움을 지각하고 감동한 최초의 풍경미를 발견한 근대인으로서 페트라르카를 소개하고 있다.〈J Burckhardt,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an, S. 274 vgl〉 페트라르카에 있어서 자연은 자신이 살아있는 거울이며,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페르라트카는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을 비판하면서 인간이 자유로운 자립성을 존중했고 미의 사상에 있어서는 조형예술가가 거부 또는 경시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를 중시했다. 

또한 키케로(Cicero)에게도 심취하고 있었다. 더욱이 중세의 그리스도교의 교의,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미의 사상에 주목하여 그 생각을 계승했다. 따라서 페트라르카의 미적 사상에서 중세는 반드시 암흑만이 아니었다. 중세미학은 르네상스의 사보나롤라나 미켈란젤로로부터 강하게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페트라르카는 신학적 형이상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인간의 존엄은 각각의 인간에게 자유로운 의지 행위, 혹은 명예에 대한 욕구형태가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엄중하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인간상은 자연의 발견과 그것에 의한 자기행위의 자유, 자아 존재로서의 자기의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페트라르카는 새로운 시대의 예언자이며 근대 인문주의자의 원상(原像)이라고 말할 수 있다. 페트라르카의 인간존엄의 생각은 1세기 이후 플라톤 아카데미의 피치노, 거기에 피코델라미란돌라에서 한층 더 철학적으로 이론화 되었다. 피치노는 플라톤, 플로티노스와 디오니시오스를 종합해 미는 신과 선의 반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