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채아트뮤지엄 '산과 바다, 내면의 풍경을 담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 비채아트뮤지엄에서는 2025년 9월 12일부터 25일까지 이기숙·전봉열 특별초대전 ‘내 안의 산과 바다’가 열리고 있다. 개막식은 12일 오후 5시, 이유리 큐레이터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신항섭 미술평론가와 스토니강 작가(문학뉴스 대표)의 축사에 이어 두 작가의 작품 설명과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 ‘산과 바다’를 인간 내면의 심리적 풍경으로 확장하는 시도를 담아낸다.
산의 선(線), 바다의 수평선 – 주제와 기획 의도
전시 제목 ‘내 안의 산과 바다’는 각 작가의 작업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기숙은 ‘선’을 중심으로 축적된 시간과 흔적을 표현해왔다. 암각화의 긁힌 흔적, 도자의 상감 기법에서 착안한 중첩의 기법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미학적 요소다. 한지를 여러 겹 쌓고 흙, 분채, 호분 등을 수십 차례 덧칠하여 완성된 화면은 빛이 반사된 듯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스며드는 고요한 깊이를 드러낸다. 작가가 말했듯 “선과 선이 만나 공간을 이루고 그 속의 작은 길은 결국 자신을 이루는 것”이라는 정의는 단순한 조형 언어를 넘어 수행적 과정으로서의 창작을 드러낸다.
반면 전봉열은 ‘바다’를 소재로 삼았다. 그는 바다를 실재와 관념,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존재적 풍경으로 제시한다. 작업의 출발은 포항 호미곶에서 찍은 흐린 날의 사진이었다. 이후 리얼리즘에서 하이퍼리얼리즘, 최근에는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담아내며 바다를 보다 다층적으로 확장시켰다. 강렬한 수평선과 희미한 수직선의 대비는 산과 바다, 질서와 혼돈, 삶과 사유의 교차를 시각화한다. 전봉열은 인터뷰에서 “수평선 너머에 있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서 찾고, 그것을 색과 경계선의 처리로 전달하려 한다”고 밝혔다.
작가들의 목소리 – 인터뷰를 통해 본 작업 세계
개막행사 이후 진행된 인터뷰는 두 작가의 창작 태도를 생생히 드러냈다.
전봉열은 작업의 과정에서 “컬러 배열이 가장 중요하다”며, 색이 주는 기본 감정이 관객과의 첫 번째 소통 창구임을 강조했다. 그는 일상에서의 관찰, 사회적·문학적 맥락에서 원동력을 얻으며, 경험을 여과하고 정제하여 함축된 화면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감상의 포인트에 대해서는 “수평선을 오래 바라보는 순간,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앞으로는 영상 작업과 구조적 설치 형식의 작업을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기숙은 1988년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1992년 동 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 30여 년간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특별한 기획 의도보다는 영원의 가치,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며, 암각화에서 비롯된 ‘긁힌 선’과 물질의 질감을 탐구해 왔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으로는 복잡한 질감 구축을 꼽으며, “단순해진 화면 속에서 깊이와 밀도를 구축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성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어려움, 육아로 인한 8년간의 작업 공백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꾸준히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해외 활동에 대한 관심도 드러내며 “내 세상과 바깥 세상 사이의 공감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전시의 의미와 확장성
이번 전시는 산과 바다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통해 단순히 풍경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인간 내면과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자리다. 산은 시간의 축적과 흔적을, 바다는 무한한 수평과 공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두 작가의 작업은 전혀 다른 언어를 통해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관람객은 화면 속 선과 색, 수평선과 질감의 층위를 따라가며 결국 자기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자연 인식이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내적 풍경’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채아트뮤지엄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관람자가 자신과 자연, 그리고 예술적 사유를 연결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기숙과 전봉열의 ‘내 안의 산과 바다’는 9월 25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