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영국 런던 중심부 왕립 법원 건물 외벽에 등장했던 익명의 거리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신작 벽화가 단 며칠 만에 삭제됐다. 이번 작품은 가발과 예복을 갖춘 판사가 시위자를 망치로 내려치는 장면을 담아, 사법권력과 시위자 간의 긴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강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런던 왕립 법원. 사진: © Banksy 2025.
런던 왕립 법원. 사진: © Banksy 2025.

법정 권위와 맞닿은 작품
해당 벽화는 9월 8일 오전 처음 발견되었으며, 판사가 쓰러진 시위자의 플래카드를 움켜쥔 채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는 장면이 흑백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붉은색으로 칠해진 핏자국은 폭력이 이미 발생했음을 암시해 작품의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작가임을 확인했지만, 작품의 의도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MyArtBroker의 뱅크시 전문가 재스퍼 토도프는 “이 벽화의 힘은 이미지 자체뿐 아니라 ‘장소의 선택’에 있다”며, 권위를 상징하는 법원 건물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임으로써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Banksy, 런던 왕립 법원 벽화 철거-사법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Banksy, 런던 왕립 법원 벽화 철거-사법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빠른 삭제와 배경
작품은 발견 직후 보안 요원에 의해 즉시 가려졌으며, 법원 측은 건물이 등록 문화재임을 이유로 철거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오히려 작품이 던진 메시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작품이 등장한 시점은 팔레스타인 액션(Palestine Action) 단체의 금지와 연계된 시위에서 수백 명이 체포된 직후였다. 영국 정부는 지난 7월 이 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고, 국제앰네스티를 포함한 인권 단체들은 이를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Banksy, 런던 왕립 법원 벽화 철거-사법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Banksy, 런던 왕립 법원 벽화 철거-사법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실제 9월 초 런던에서만 900명 이상이 팔레스타인 액션 지지 혐의로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벽화가 사법권력과 시위 진압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시각적 풍자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뱅크시의 사회 참여적 예술 맥락
뱅크시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거리 예술로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2016년 프랑스 칼레 난민촌 문제를 다룬 작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를 고발한 연작 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장난기 어린 작품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잠시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으나, 이번 벽화는 다시금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드러낸다.

Banksy, 런던 왕립 법원 벽화 철거-사법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Banksy, 런던 왕립 법원 벽화 철거-사법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표현의 자유와 권위의 충돌
왕립 법원 외벽의 짧은 생명을 끝낸 이 벽화는 예술이 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할 때 어떤 긴장을 불러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품의 삭제는 단순한 문화재 보존 차원을 넘어, 표현의 자유와 공권력의 경계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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