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9월 4일, 서울 강남 코엑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온도가 달랐다. 제4회 프리즈 서울과 2025 키아프 서울이 동시에 열리면서,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 큐레이터, 그리고 세계 유수 갤러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낸 열기는 단순한 박람회 이상의 것이었다.

프리즈 2025 현장-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프리즈 2025 현장-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붐비는 통로, 긴장된 부스
행사 첫날, 통로를 가득 메운 인파와 부스마다 몰려드는 관람객들 속에서 나는 한국 미술시장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확신을 받았다. 갤러리스트들의 눈빛은 긴장으로 빛났고, 대형 갤러리들은 일찌감치 예약된 미팅을 소화하느라 분주했다. 일부 신생 갤러리들은 다소 한산한 풍경을 보였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끌어내려는 도전적인 태도가 돋보였다.

눈에 띈 초고가 거래
현장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Hauser & Wirth 부스였다.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대형 3부작 캔버스가 450만 달러에 판매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주위 갤러리스트들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스쳤다. 조지 콘도의 작품이 12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kashi Murakami-무라카미 다카시A Picture of the Blessed Lion Who Nestles with the Secrets of Death and Life, 2014Acrylic and gold leaf on canvas mounted on wood panel, in 4 parts-나무 패널, 캔버스에 아크릴, 금박300 x 600 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kashi Murakami-무라카미 다카시A Picture of the Blessed Lion Who Nestles with the Secrets of Death and Life, 2014Acrylic and gold leaf on canvas mounted on wood panel, in 4 parts-나무 패널, 캔버스에 아크릴, 금박300 x 600 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Nam June Paik-백남준 Untitled (Painting), 2005 Oil on canvas-캔버스에 유화 61 x 76.2 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Nam June Paik-백남준 Untitled (Painting), 2005 Oil on canvas-캔버스에 유화 61 x 76.2 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Thaddaeus Ropac 부스에서는 바젤리츠와 알렉스 카츠의 작품이 각각 200만 달러 안팎에 판매되었고, 무엇보다 한국 작가 정희민의 작품이 3만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신진 작가가 자리 잡아가는 순간을 목격하는 일은 묘한 전율을 주었다.

GLADSTONE-David Salle-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GLADSTONE-David Salle-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GLADSTONE-Rirkit Tiravanija-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GLADSTONE-Rirkit Tiravanija-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GLADSTONE-Rirkrit Tiravanija-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GLADSTONE-Rirkrit Tiravanija-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한국 갤러리의 저력
국내 갤러리들도 힘을 보여주었다. 학고재는 김환기의 작품을 140만 달러에 판매했고, 송현숙 작가의 작업도 유럽 컬렉터에게 전달됐다. 갤러리 현대는 정상화와 존 파이 작품을 각각 60만 달러, 30만 달러에 판매했다. 국제 갤러리 역시 제니 홀저와 우고 론디노네 등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속속 판매하며 ‘서울에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학고재-김환기-구름과 달1962 Oil on canvas, 1004-65.4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학고재-김환기-구름과 달1962 Oil on canvas, 1004-65.4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학고재-하정우-무제 2024 Mixed media on canvas, 162.2-130.3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학고재-하정우-무제 2024 Mixed media on canvas, 162.2-130.3cm-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
나는 부스를 돌며 몇몇 딜러와 대화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최고의 작품만 원한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시, 앤서니 곰리 같은 이름 앞에서는 여전히 빠른 결정이 내려졌고, 가격은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이름 없는 작가들의 작품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예술적 실험과 상업적 성과 사이에서 한국 미술시장이 겪는 긴장감이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문화적 축제의 장
박람회장은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문화적 축제의 공간이었다. 리움에서 열린 이불 개인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마크 브래드포드 전시, 그리고 새롭게 개관한 ‘프리즈 하우스 서울’까지, 서울은 그야말로 예술의 열기로 가득했다. K팝 스타 RM과 블랙핑크 리사가 행사장을 찾은 장면은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켰고, 해외 미술관장과 큐레이터들의 참여는 한국 미술시장이 단순한 지역적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르포의 끝에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을 직접 걸으며 느낀 점은 명확하다. 한국 미술시장은 불안정한 경제와 정치적 격동 속에서도 국제적 무대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최고의 이름’에 집중하는 수집가들의 선택이 젊은 작가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으로 남아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프리즈와 키아프는 “서울은 지금, 세계 미술의 심장부다”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졌다. 그 현장에 직접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한국 미술의 내일을 긍정할 충분한 이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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