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미술관, 표현주의 걸작 ‘방랑 기사’ 속 또 다른 이야기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구겐하임 뉴욕 미술관이 소장한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의 대표작 〈방랑 기사〉(1914–15)가 최첨단 과학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표현주의 거장’으로 불리는 코코슈카의 작품은 강렬한 붓질과 심리적 묘사로 유명하지만, 이번 연구는 그의 작업 방식과 내면적 갈등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분석은 구겐하임이 진행 중인 기획전 '현대 유럽의 흐름'(2025.7.15~2026.3.22)에 앞서 보존 처리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엑스레이와 적외선 반사 촬영을 통해 드러난 결과, 작품의 표면 아래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인물상과 스핑크스 형상이 발견되었다.
코코슈카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전후의 전환기에 '방랑 기사'를 완성했다. 갑옷을 입은 인물이 초현실적 풍경 속에 쓰러져 있는 장면은 작가 자신의 내면적 상처와 자화상적 성격을 동시에 품고 있다. 특히 발치의 스핑크스는 당시 연인이었던 알마 말러(Alma Mahler)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신 영상 분석에서는 기존 스핑크스 아래에 기사와 마주보는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이는 관계의 변화, 전쟁 경험, 그리고 작가의 심리적 전환이 화폭 속 상징에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큐레이터 비비안 그린은 “코코슈카가 더 이상 ‘빛나는 기사’가 아니라 상처 입은 기사로 자신을 인식했을 수 있다”며, 알마 말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전쟁 체험이 작품의 방향을 바꾸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존가 줄리 바텐 역시 “작가가 이전 구성을 재활용하고 변주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방랑 기사'의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코코슈카의 판화 작업과의 연관성, 화면 속 풍경의 실체 등 풀리지 않은 질문은 많다. 그러나 이번 성과는 작품이 단순히 정지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 속에서 변화하는 ‘사건’임을 증명한다.
구겐하임은 전시 기간 동안 연구 결과를 반영한 오디오 가이드와 무료 밀착 투어를 운영한다. 큐레이터 메건 폰타넬라는 “1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앞으로 후대 연구자들이 밝혀낼 발견 역시 끝없는 예술적 매력의 일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표현주의의 거장을 다시 읽는 기회이자, 첨단 과학과 미술사가 어떻게 교차하며 작품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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