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 2025년 8월 1일~30일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에서 2025년 8월 1일부터 30일까지 조각가 김남현의 초대전 'POLYMER'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인간 존재의 심리적·사회적 구조를 새로운 신작과 함께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전시 제목 ‘폴리머(Polymer)’는 화학에서 다수의 단위체가 결합해 형성되는 고분자를 의미한다. 김남현은 이를 단순한 물질 개념에서 확장시켜, 사회·제도·기억·관계 등 복합적 요소 속에서 형성되고 변형되는 인간의 존재를 비유하는 은유로 삼았다. 즉, 인간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관계, 억압과 갈등이 중첩되어 형성된 다층적 집합체라는 것이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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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신작 'Polymer'-해체와 융합의 몸
전시장 1층에 놓인 신작 'Polymer' 시리즈는 축적과 분해의 역학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재구성한다. 파편처럼 붙여진 조각들과 중첩된 표면은 단일한 자아의 안정된 모습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과 기억의 층위를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몸을 드러낸다. 여기서 신체는 정체성의 표상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과 심리적 경험이 켜켜이 쌓여 나타나는 유기적 집합체다.

김남현은 이 과정을 통해 “몸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가 새겨 놓은 흔적의 집합”임을 강조한다. 이는 푸코가 말한 ‘훈육된 신체’나 주디스 버틀러의 수행적 정체성 개념과도 닿아 있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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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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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Confined One'(2008)·'Cross Tolerance'(2018)-억압의 장치들
2층에서는 작가의 과거 작업을 통해 억압과 규범화의 문제를 다룬다. 'Confined One' 시리즈는 마치 고문 도구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사회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내재화된 규범과 억압을 형상화한다. 개인은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구조적 틀에 의해 규제받고 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Cross Tolerance'는 억압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감각이 무뎌지는 ‘내성(tolerance)’ 상태를 표현한다. 구조적 억압이 개인의 심리 속에 각인될 때, 자율성과 주체성은 점차 마비된다. 작품 속 중첩된 형태와 무겁게 가라앉은 조형은 바로 그 심리적 무감각화를 상징한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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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Familiar Conflict'(2014, 2016)-관계 속 균열
3층의 'Familiar Conflict' 시리즈는 보다 내면적인 층위에서 인간 관계를 탐구한다. 관계 속에서 얽히고 충돌하는 자아와 타자의 경계,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긴장과 균열을 조형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매끄럽지 않은 표면과 충돌하는 구조는 인간 관계가 만들어내는 불균형,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정체성의 균열을 은유한다.

이 작업은 ‘사회적 신체’와 ‘내면적 심리’라는 김남현 작업 세계의 두 축이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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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사회적 신체와 조각 언어
김남현은 일관되게 ‘신체’를 작업의 중심에 두어왔다. 그러나 그의 조각 속 신체는 해부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화된 몸, 억압된 몸, 기억이 새겨진 몸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 현대조각이 물질과 공간 실험에 집중했다면, 김남현의 조각은 사회적·심리적 구조 속에서 변형되는 신체의 의미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그의 작업은 물리적 질료와 사회적 은유가 맞물려 있다. 파편화된 표면, 결합된 단위체, 억압적 장치들은 단지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놓여 있는 구조적 조건을 드러내는 장치다. 이는 한국 현대조각에서 보기 드문 심리적·사회적 탐구로, 동시대 조각 담론 속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작가의 이력과 의미
김남현(1980)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권진규 아틀리에, 경기창작센터, 고양레지던시 등에서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작품세계를 발전시켜왔다. '얇은 잠 마른 꿈'(2019), 'Cross Tolerance'(2018), 'Familiar Conflict'(2014) 등 개인전을 통해 일관되게 인간의 사회적·심리적 구조를 탐구해왔으며, 소마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JCC아트센터 등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했다.

서울문화재단, 아르코 신진작가워크숍,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등 다수의 공모에도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 김한정 기자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 김한정 기자

 ‘Polymer’가 던지는 질문
POLYMER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사회적 제도와 관계, 기억과 감정은 어떻게 한 개인의 몸에 중첩되고, 또 변형시키는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잃어가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가.

김남현은 신체를 해체와 축적의 장으로 바라보며, 존재를 끊임없이 조립되고 해체되는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는 고정된 자아 개념을 넘어, 동시대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다층성을 밀도 있게 드러내는 사유의 장치다.

관훈갤러리 김남현 초대전 'POLYMER'-사진촬영 김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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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초대전 'POLYMER'는 김남현이 지난 20여 년간 탐구해온 주제의식과 조형 언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사회적 구조 속 억압된 몸, 관계 속 균열된 자아, 그리고 신작에서 제시되는 다층적·융합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오늘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조각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마주하게 하는 철학적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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