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상의 아트힐링]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필자는 늘 인간관계 속에서 전하지 못한 말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지만, 정작 가장 어렵게 꺼내는 말이 있다. 바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이 세 마디는 단순해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무겁게 맴돌며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대신 자존심을 내세운다. 미안하다는 말을 삼키고, 고맙다는 표현을 뒤로 미루며, 사랑한다는 마음은 더더욱 숨겨버린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결국 닿지 못한 말들이 가슴속에 편지처럼 쌓여만 간다. 상담심리전문가이자 화가로서 나는, 그렇게 가슴 속에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전해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만 하는 내담자들의 감정들을 작품으로 옮겨왔다.
심리학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고나 재난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이 바로 이 세 단어라고 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의 70% 이상이 이 세 가지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비로소 가장 절실하게 떠올리는 말은 결국 살아가는 동안 미처 전하지 못했던 그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평소에 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에서 찾는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긍정하는 힘이지만, 자존심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놓은 벽과 같다. 진정한 자존감은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되지만, 자존심은 그 용기를 가로막는다. 결국 우리는 자존심 때문에 가장 소중한 말들을 삼켜버리며, 그 말들이 닿지 못한 채 가슴속에 묻은 편지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나의 작품 'Summer Flowers_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는 바로 그 닿지 못한 편지를 화폭에 옮겨낸 연작이다. 38x38cm 크기의 세 점은 각각 붉은빛의 꽃으로 피어났지만, 자세히 보면 꽃잎이라기보다 마음의 파동에 가깝다. 중심부는 마치 편지를 접어둔 흔적처럼 남아 있고, 번져나가는 붉은 색은 전하지 못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닮았다.
세 점은 각각 독립되어 있지만, 나란히 놓이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마치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세 문장이 합쳐져 한 통의 편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을 그리면서 상상했다. 만약 우리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 말을 더 자주 나눌 수 있다면 인간관계의 갈등은 얼마나 다른 색을 띠게 될까? 꽃은 시들더라도 다시 피어나지만, 말은 타이밍을 놓치면 더 이상 전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림 속 꽃은 시들지 않는 편지처럼, 언제나 피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다.
예술은 종종 언어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있지 않은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는 세 마디는 단순히 관계를 회복시키는 말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가장 본질적인 언어다.
그림 앞에 서는 순간, 관객은 각자의 가슴속 편지를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용기를 얻어 전하지 못한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말의 부재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후회 속에서 전할 말이라면,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림으로 편지를 쓴다. 말로 닿지 못한 자리를 예술이 대신 채워주기를 바라며.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시인화가. 미국 오이코스 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회장.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