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20세기 스페인 미술사에서 가장 대담했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 마루하 말로(Maruja Mallo, 1902~1995)의 이름이 다시금 전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생전에 피카소와 미로, 달리와 교류하며 스페인 모더니즘의 선두주자로 자리했던 그녀는 사후 오랫동안 남성 동료들에 비해 과소평가되며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그러나 올해, 그녀의 예술 세계는 스페인 대표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Maruja Mallo, Canto de las espigas(밀가루의 노래) , 1939. 사진 ©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Maruja Mallo, Canto de las espigas(밀가루의 노래) , 1939. 사진 ©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이번 회고전은 산탄데르의 센트로 보틴(Centro Botín)에서 9월 14일까지 진행되며, 이후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전시 제목은 "마루하 말로: 가면과 나침반(Máscaras y Brújula)"으로, 시카고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부에노스아이레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 등 세계 주요 기관에서 대여한 회화 90여 점이 공개된다.

1936년 마드리드 스튜디오의 마루자 말로(Maruja Mallo). 사진-©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1936년 마드리드 스튜디오의 마루자 말로(Maruja Mallo). 사진-©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말로의 예술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사회적 풍자를 담아낸 독창성으로 당대의 통념에 도전했다. 1930년대 제작된 "하수구와 종탑(Cloacas y campanarios)" 연작은 전쟁과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불길한 풍경을 담아내며, 이후 아르헨티나 망명 시절 제작한 "노동의 종교(La religión del trabajo)" 연작은 여성 노동자와 사회주의적 이상을 기념했다. 그녀의 작품은 스페인 내전과 망명이라는 역사적 굴곡 속에서 ‘예술은 시대와 함께 싸운다’는 신념을 증명한다.

마루자 말로(Maruja Mallo), 라 베르베나(박람회), 1927년. 사진- ©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마루자 말로(Maruja Mallo), 라 베르베나(박람회), 1927년. 사진- ©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특히 이번 전시는 말로의 잘 알려진 초기 아방가르드 시절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 제작된 후기 연작과 미발표작까지 망라해 ‘스페인 모더니즘의 또 다른 축’을 제시한다. 미술사학자 후안 페레스 데 아얄라는 전시 도록에서 “당대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여겨졌던 말로의 실험이, 이제야 가장 현대적인 시각에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루자 말로(Maruja Mallo), Antro de Fósiles(화석굴), 1930년. 사진-©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마루자 말로(Maruja Mallo), Antro de Fósiles(화석굴), 1930년. 사진-©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1995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말로는 70년에 걸친 예술 여정을 이어가며 스페인 문화부 금메달 등 다수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사후 30년간 그녀의 명성은 경매 시장과 제도권에서 점차 잊혔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거래된 작품은 손에 꼽히며, 최고 낙찰가는 22년 전 기록된 28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번 회고전이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와 기관을 통해 그녀의 작품 가치 재평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Maruja Mallo, Arquitectura vegetal I 또는 La pera(건축 식물 I 또는 배), ca.1933. 사진-© Maruja Mallo, VEGAP, 산탄데르, 2024.
Maruja Mallo, Arquitectura vegetal I 또는 La pera(건축 식물 I 또는 배), ca.1933. 사진-© Maruja Mallo, VEGAP, 산탄데르, 2024.

스페인 현대미술사에서 마루하 말로는 단순한 ‘잊힌 여성 화가’가 아니다. 그녀는 모더니즘의 중심에서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적 실험을 동시에 밀어붙였던 ‘용감한 실험가’였다. 이제야 비로소 그 이름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호명되고 있다.

6 마루자 말로, Naturaleza Viva XII (1943). 사진-© Maruja Mallo, VEGAP, 산탄데르, 2024.
6 마루자 말로, Naturaleza Viva XII (1943). 사진-© Maruja Mallo, VEGAP, 산탄데르, 2024.

"마루하 말로: 가면과 나침반" 전시는 2025년 9월 14일까지 산탄데르 센트로 보틴에서 개최되며, 2025년 10월 7일부터 2026년 3월 16일까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전시의 큐레이터인 파트리샤 몰린스가 2025년 스페인 산탄데르의 센트로 보틴에 설치된 '마루하 말로-가면과 나침반' 전시에 설치된 두 개의 '여성의 머리' 그림 사이에 서 있습니다. 사진-벨렌 데 베니토.
전시의 큐레이터인 파트리샤 몰린스가 2025년 스페인 산탄데르의 센트로 보틴에 설치된 '마루하 말로-가면과 나침반' 전시에 설치된 두 개의 '여성의 머리' 그림 사이에 서 있습니다. 사진-벨렌 데 베니토.
Maruja Mallo, El Mago - Pim Pam Pum(마법사 - Pim Pam Pum), 1926. 사진-©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Maruja Mallo, El Mago - Pim Pam Pum(마법사 - Pim Pam Pum), 1926. 사진-© Maruja Mallo, VEGAP, Santand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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