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세계 미술시장은 지금 변곡점에 서 있다. 가고시안(Gagosian),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페이스(Pace),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 등 메가 갤러리들이 과감하게 신진 작가를 영입하며, 전통적인 작가 커리어 경로를 재편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규모 갤러리가 신진 작가를 발굴해 전시와 상을 통해 기반을 쌓고, 중견 작가로 성장한 뒤 블루칩 갤러리로 옮겨가는 ‘단계적 성장 모델’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과정이 단축되거나 심지어 생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예술 생태계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현상이다.

사샤 고든, Sore Loser (2021). 작가와 매튜 브라운 제공
사샤 고든, Sore Loser (2021). 작가와 매튜 브라운 제공

글로벌 미술시장의 변화 – ‘빠른 영입, 빠른 상승’
아트 바젤과 UBS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2024년 사이 전 세계 갤러리 매출은 평균 6% 감소했지만, 연매출 25만 달러 이하의 소규모 갤러리는 오히려 17% 성장했다. 고가 미술품이 잘 팔리지 않으면서, 메가 갤러리들이 저가중가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2024년의 조지 루이. 그는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가 대표하는 최연소 작가입니다. 사진-켐카 아조쿠, 작가 제공, 한나 배리 갤러리(Hannah Barry Gallery) 및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 조지 루이.
2024년의 조지 루이. 그는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가 대표하는 최연소 작가입니다. 사진-켐카 아조쿠, 작가 제공, 한나 배리 갤러리(Hannah Barry Gallery) 및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 조지 루이.

그 결과, 20대 후반~30대 초반 작가들이 미술관 데뷔전조차 치르기 전에 메가 갤러리와 계약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조지 루이(30세)는 하우저 앤 워스에, 팸 에블린(27세)은 페이스에, 사샤 고든(1998년생)은 즈워너에 합류하며 경력 곡선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전통적으로 필요했던 ‘작은 미술관 전시 – 비엔날레 – 중견 갤러리 – 메가 갤러리’라는 과정이 건너뛰어지고 있는 것이다.

뉴욕과 런던에서 활동하는 딜러들은 “지금은 신진 작가 영입이 ‘선착순 경쟁’처럼 변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그만큼 ‘첫 전시 이후 지속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트 바젤 홍콩 2025에서 노라 투라토가 선보인 작품. 사진-키스 츠지-게티 이미지.
아트 바젤 홍콩 2025에서 노라 투라토가 선보인 작품. 사진-키스 츠지-게티 이미지.

한국 미술시장, 비슷한 흐름
이러한 흐름은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관찰된다. 국내에서도 국제 아트페어와 경매 시장이 성장하면서, 젊은 작가들의 가격이 빠르게 치솟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NFT 열풍 이후 일부 신진 작가의 작품이 수천만 원대에 거래된 사례는, 글로벌 시장의 ‘하이프 머신(Hype Machine)’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가격 급등이 작가 커리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국내 미술 자문가는 “첫 개인전에서 500만 원에 팔리던 작품이 2년 만에 5천만 원이 되면, 중장기적으로 시장이 버티지 못한다”며 “작가 스스로도 가격을 올리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몇몇 신진 작가들이 빠르게 대형 갤러리에 입성하거나 국제 아트페어에서 주목받았지만, 이후 시장 관심이 줄어들면서 작품 가치가 급락한 사례가 있다. 이는 해외에서 지적된 “첫 전시보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전시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23년의 사샤 고든. 사진-윌리엄 제스 레어드.
2023년의 사샤 고든. 사진-윌리엄 제스 레어드.
2025년 스위스 아트 바젤 입구로 걸어가는 방문객들. 사진-Fabrice Coffrini - AFP via Getty Images.
2025년 스위스 아트 바젤 입구로 걸어가는 방문객들. 사진-Fabrice Coffrini - AFP via Getty Images.

메가 갤러리와 작은 갤러리 – 공생할 수 있을까
글로벌 미술계에서는 최근 공동 대리 계약(co-representation)이 늘고 있다. 신진 작가를 처음 발굴한 소규모 갤러리와, 국제 네트워크를 가진 메가 갤러리가 함께 작가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계약은 종종 힘의 불균형을 낳는다. 작은 갤러리는 작가 육성에 투자했음에도, 실질적 영향력을 잃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소규모 갤러리들은 작가의 첫 전시를 마련하고 미술관과의 연결을 돕지만, 작가가 어느 순간 메가 갤러리와 계약하면서 관계가 단절되기도 한다.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작은 갤러리가 없다면 한국 미술 생태계가 건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구조에서는 ‘작가의 유년기’를 함께한 갤러리가 종종 배제된다”고 말했다.

팸 에블린의 초상화, 2023년. 29세의 이 작가는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소속입니다. 사진-로버트 글로와키(Robert Glowacki). © 팸 에블린. 페이스 갤러리 제공.
팸 에블린의 초상화, 2023년. 29세의 이 작가는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 소속입니다. 사진-로버트 글로와키(Robert Glowacki). © 팸 에블린. 페이스 갤러리 제공.
세바스찬 글래드스톤. 사진-닉 매시. 세바스찬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세바스찬 글래드스톤. 사진-닉 매시. 세바스찬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한국 시장의 과제 –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
해외 사례는 한국 미술시장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신진 작가의 ‘빠른 성공’이 장기적으로 작가와 시장에 도움이 될까? 혹은 단계적 성장 모델이 여전히 유효할까?
메가 갤러리의 역할은 글로벌 시장 접근과 가격 안정화에 강점이 있다. 그러나 소규모 갤러리는 작가가 실험하고 성장할 시간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하다.

궁극적으로는 두 시스템이 공생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신진 작가가 빠르게 국제 무대에 진출하더라도, 국내 소규모 갤러리와의 협력과 균형이 보장될 때 한국 미술 생태계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형 갤러리의 신진 작가 영입 경쟁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빠른 성공’과 ‘지속 가능한 성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국 미술시장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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