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상상력의 제상(諸像) Ⅲ
다시 말해, 양자의 전제가 되고 있는 감각적 지각을 더한 제3자의 차이는 우선 강한 활기의 차이에 의해 설명된다. 기억은 이미 감각의 활기를 잃고 있지만 상상에서는 그것이 더욱 저하된다. 그러나 상상은 기억과 다르며 경험되었을 때의 관념의 순서를 다시 짜내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 재조합에 있어서 하나의 관념으로부터 다른 관념으로 이행하는 것은 연상의 활동이며 그때 세 개의 패턴이 두 개의 관념의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즉, ‘유사·인접·인과관계의 세 가지다.〈David Hume 『인생론』제1부 4~5(142쪽이하), 특히 예술창조나 광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190쪽 이하를 참조〉 이 연상의 유형은 상상력의 법칙으로 제출된 유일한 이론이며 수사적(修辭的) 문채(文彩)의 기본적인 형과도 조응하고 있다. 칸트는 이것을 재생적 상상력으로서 일단 낮게 보지만, 정신적 생을 깊이 지배하고 있는 원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기억과 관련된 상상력 개념을 일신(一新)한 것은 칸트의 생산적 상상력이다. 칸트의 상상력(Einbildungskraft, 자주 구상력이라고 번역 된다)은 감각적 자극소여의 다양성을 하나의 형상으로 일치하고, 정신(悟性)의 이해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체·물체와 정신의 매개이며 이 점에서 데카르트의 상상력설의 연장선에 있다. 이미 어떤 상을 상상하거나 혹은 상기하는 상상력은 재생적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 상이 이미 경험되지 않고 있으면 안 된다. 최초의 상을 통일하여 처음부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활동은 ‘우선 경험적 종합’이며, 그것을 짊어지는 상상력은 ‘생산적’이라고 불린다.
〈칸트 『순수이성비판』(Ⅰ 선험적 원리론 제2부 선험적 논리학 제1부문 제1편 제2장 순수오성개념의 연역에 대하여, 초판의 2~3절). 재생적 상상력이 데카르트에 있어서 상상력에 대응하는 생산적 상상력은 ‘공통감각’에 속한다.〉 생산적 상상력이 센스 데이터를 일치해서 형성한 형상은 더욱 개념과 상의 중간적 혹은 도식에 매개되어서 오성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생산적 상상력은 단지 지각을 유지한 힘과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정신이 물질세계를 제어하는 기구의 요점이며 칸트 철학의 핵심을 형성하는 동시에 다음 세대에 있어서 자유로운 능력으로서의 상상력, 혹은 창조적 상상력의 개념을 키 개념의 위치에 밀어 올리는 만큼 충격을 준다. 미학상으로 상상력이 예술에 관한 중요한 술어로 채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말기의 헬레니즘이다. 미술논자 필로스트라토스(Philostratos)는 상상력을 모방 원리에 대비하고 단지 본 것을 그릴뿐만 아니라 본 적이 없는 것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형용했다.〈필로스트라토스 『아폴로니오스傳』에 속한다.〉 또한 수사학(修辭學)의 저작 『숭고론』의 저자 롱기누스(Pseudo-Longinos(1 C)는 원래 심상일반을 가리킨 ‘환타지아’ 라는 단어가 감동을 일으키는 표현을 채용할 수 있다는 신경향을 지적하고 있다.〈롱기누스 『숭고론』제15장〉
18∼19세기에도 이것이 같은 사상의 조류로 인정을 받는다. 요즘의 상상력은 미학의 중심개념의 하나가 되었고, 또한 비유 표현을 가리켜서 이미지라고 부르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지각으로 작용하는 상상력에 주관의 자유 혹은 창조성을 인정한 칸트는 『판단력비판』에 있어서 상상력을 미학과 결부시켜 중요한 역할을 주었고, 19세기에 창조적 상상력 개념에 길을 열었다. 대상을 미라고 판단하는 활동의 특징을 칸트는 상상력과 오성의 조화적인 유동으로 보았다. 그때 오성의 몫은 ‘합법칙성(合法則性)’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 규정은 ‘상상력의 자유로운 합법칙성’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이란 연상(緣想)의 법칙에 지배된 재생적인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어서 자발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해, 자신이 스스로 감각적인 형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상상력이다. 확실히 창작과 달라서 감상의 경우에는 대상이 주어지고 있어서 그 대상의 형은 상상력의 활동을 규제하므로 완전한 자유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창작에 있어서 상상력 대로 만들어 내는 형이 미적 대상을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이 문맥에서 칸트의 논술은 상상력의 측면에서 상당히 대담한 경사(傾斜)를 보인다. 즉, 오성적인 합법칙성은 필요조건에서는 있지만 그다지 현저하지 않은 것이 바람직하고 매력은 오히려 상상력의 풍부함 쪽에 있다. 거기에서 칸트는 영국식 정원이나 가구의 바로크 취미, 그리고 수마트라(Sumatra)의 야성적인 자연미를 용인하는 조짐을 내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