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2025년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 제8회 ‘꿈을 두드리는 미교전(美敎展)’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 그리고 현직 미술교사들이 함께하는 ‘사제동행’ 형식으로 진행됐다. 어린 학생들의 자유롭고 순수한 표현과 교사 작가들의 성숙한 미학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며, 교육과 예술의 본질적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미교전 설립자인 남기희 작가의 출품작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 전시의 상징적 중심축을 형성했다. 수년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를 이끌어온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통해 후학들에게 ‘예술가로 살아가는 태도’와 ‘창작의 지속성’을 보여주었다.
‘무하유지향’과 ‘무아의 여백’ -자연인으로서의 회귀
남기희 작가는 올해 1월, 라메르갤러리 초대 개인전 ‘무하유지향-무아의 여백(The space of no self)’을 통해 비움과 채움의 역설을 탐구한 바 있다. 그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이름과 직함을 내려놓고 ‘자연인 남기희’로 돌아가 오롯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창작의 시간을 기록했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허송세월로 바쁘다”는 김훈 작가의 문장을 인용하며, 무위(無爲) 속에서 오히려 가득 차는 창작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캔버스 앞에서 느린 호흡으로 여백을 채우다, 때로는 큰 헤라를 들어 힘 있는 터치로 화면을 뒤흔드는 과정은 작가의 사유가 행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화면 속 ‘여백’의 미학과 추상의 철학
남기희의 ‘무아의 여백’ 시리즈는 절제된 무채색과 불규칙한 선·면의 조합을 통해 원초적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두꺼운 질감과 물성은 단순한 추상회화를 넘어, ‘욕심내지 않고 순리를 따른다’는 작가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는 단순히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사유와 감정이 머무는 정신적 채움의 장소로 기능한다.
그는 이번 미교전에 이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 출품했다. 교사와 학생이 한 무대에서 전시하는 ‘사제동행’의 형식은, 비움과 채움,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임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교육자이자 창작자로서의 균형
남기희 작가는 개인전 12회, 해외 및 국내 단체전 330여 회에 참여했으며, 뉴욕·LA·밀라노 등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제24대 한국미협 임원 초대전, 광진미술협회전, K-AT 프라이즈 초대전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력은, ‘꿈을 두드리는 미교전’을 창립하고 8년째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예술의 가치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교육자로서의 경험과 작가로서의 탐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이는 단순한 회화 작업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세대 간 예술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다.
사제동행의 울림
이번 미교전에서 남기희의 작품은 다른 교사 작가들의 출품작, 그리고 학생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작품이 가진 솔직한 감정과 실험 정신, 그리고 교사 작가들의 깊이 있는 사유가 서로의 빛을 반사하며, 전시는 ‘미술 교육’이라는 행위가 지닌 근본적인 힘을 다시 확인시켰다.
결국 ‘무하유지향’과 ‘무아의 여백’은 남기희 개인의 예술 철학을 넘어, 미교전 전체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우고 채우며,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교사와 학생, 과거와 미래, 개인과 공동체를 잇는 이 여정에서, 남기희의 작품은 그 중심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울림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