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생존 너머의 삶, 녹색의 개척자를 만나다'
서울미술관 : 2025년 8월 6일~12월 28일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햇빛이 닿지 않는 바위 그늘, 오래된 돌담의 틈새, 빗물 머금은 숲속 한 켠. 그곳에 이끼는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뿌리를 내린다. 꽃도 씨앗도 없이, 스스로의 호흡과 수분만으로 생명을 이어가며 주변과 다투지 않고 스며드는 존재. 2025년 여름, 서울미술관은 이 느린 생명체의 방식을 예술로 확장한 단체 기획전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 떼'를 2025년 8월 6일~12월 28일까지 선보인다. 전시는 생존을 넘어선 ‘함께 살아가는 법’을 7인의 작가 시선을 통해 탐구한다. 참여 작가는 권세진, 김찬중, 김태수, 박지수, 이목하, 이연미, 토드 홀로벡이다.

참여 작가별 작품 세계
권세진
‘조각 그림’이라는 독창적 방식을 통해 시간과 기억의 결을 엮는다. 사진 이미지를 잘게 나누어 다시 그려 붙이는 과정은 마치 이끼가 한 포자씩 모여 군락을 이루는 시간의 축적과 닮았다. 먹과 한지가 번짐과 스밈을 허용하며, 새벽 운무와 윤슬의 순간을 화면 위에 머물게 한다.

권세진, 바다를 구성하는 741개의 드로잉(741 Drawings forming the sea), 2020, 종이에 먹(Ink on paper), 190 x 390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권세진, 바다를 구성하는 741개의 드로잉(741 Drawings forming the sea), 2020, 종이에 먹(Ink on paper), 190 x 390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김찬중
감정을 시각화한 이모지를 회화 속에 녹여, 파편화된 자아의 단면들을 병치한다. 각각의 감정은 이끼의 작은 잎처럼 모여 복합적 인간상을 형성하며, 우리 내면의 ‘군락’을 드러낸다.

김찬중, Untitled, 2025, 패널에 유화(Oil on panel), 50 x 60 cm (1)-사진제공 서울미술관
김찬중, Untitled, 2025, 패널에 유화(Oil on panel), 50 x 60 cm (1)-사진제공 서울미술관

 

김태수
철판을 절단·중첩해 만든 조각은 빛과 그림자의 흐름 속에서 변모한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순환과 조화를 담으며, 이끼처럼 수평적으로 확산되는 생태적 질서를 시각화한다.

김태수, 태고의 신비(Myster of Antiquity), 2019, Painted Stainless Steel, 가변설치-사진제공 서울미술관
김태수, 태고의 신비(Myster of Antiquity), 2019, Painted Stainless Steel, 가변설치-사진제공 서울미술관

 

박지수
평면성과 균질한 밀도로 그린 풍경화는 모든 존재가 동등하다는 조화의 미학을 드러낸다. 계절의 변화 속에 반복되는 생명과 소멸은, 소리 없이 자라는 이끼의 생태를 닮았다.

박지수, 모든것의 장소, 2023, 캔버스에 유화(Oil on canvas), 293.1 x 387.3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박지수, 모든것의 장소, 2023, 캔버스에 유화(Oil on canvas), 293.1 x 387.3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이목하
SNS 이미지를 회화로 옮겨 표층과 심층의 간극을 탐구한다. 다층적 색채 레이어는 이끼가 표면 아래 깊이 뿌리내리듯, 내면의 진짜 얼굴을 찾는 여정을 담는다.

이목하, Good Luck, 2025, 광목에 유화(Oil on cotton), 180.5 x 144.6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이목하, Good Luck, 2025, 광목에 유화(Oil on cotton), 180.5 x 144.6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이연미
정원이라는 유동적 공간 속에 현실과 환상을 겹쳐 놓는다. 화면 속 캐릭터와 요소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이루며, 이끼처럼 서로 스며드는 자율적 세계를 형성한다.

Ivory Yeunmi Lee, 앨리슨-흔들리는 갈대 속에서, 린넨에 아크릴, 121.9 x 121.9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Ivory Yeunmi Lee, 앨리슨-흔들리는 갈대 속에서, 린넨에 아크릴, 121.9 x 121.9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토드 홀로벡
미디어 아트를 통해 정보의 불확실성과 현실·가상의 경계를 드러낸다. 관람자의 행동에 반응하는 장치는,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이끼의 서식 환경과 맞닿는다.

Todd Holoubek, Ambiguous, 2024, 단채널, LED 매트릭스, 혼합재료, 140 x 300 x 20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Todd Holoubek, Ambiguous, 2024, 단채널, LED 매트릭스, 혼합재료, 140 x 300 x 20 cm-사진제공 서울미술관

 

전시 관람 정보
전시는 2025년 8월 6일부터 12월 28일까지 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현장에서 무료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며, 15인 이상 단체는 ‘아트패스’ 해설 프로그램을 사전 예약할 수 있다. 본 전시는 석파정과 야외 조각전 《아로새긴 숲길》, 기획전 《카와시마 코토리: 사란란》과 함께 관람 가능하다.

맺음말
이끼는 소리 없이 번성하며, 땅과 바위, 나무와 물가 어디든 스며든다. 경쟁과 소유가 지배하는 시대에, 이끼의 생존법은 다름 아닌 ‘함께 살아가는 법’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길어 올린 이 녹색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공존과 지속의 가치를 다시금 묻는다. 관람객은 작품 속 이끼의 숨결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그늘 속에도 생명이 자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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