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제상(諸像) Ⅱ
박명인 미학산책-미학연구소 회장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상상력(phantasia)은 현실의 대상 부재에서도 그 상은 정신의 힘이며 기억이나 병리로서의 광기와 겹치고 있어서 인식 면에서는 오류의 씨앗이 되는 것이 많다. 중세의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을 통해서 상상력은 기억뿐만 아니라 감각적 자극을 통괄(統括)하는 공통감각과 가까운 관계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기억으로 상상된 상은 외부감각으로부터 공통감각으로 이끌어져 온 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상을 근거로 해서 데카르트는 해부학적인 지견(知見)에 기초를 두고 뇌(惱)안에 위치하는 공과선(松果線)이라는 작은 기관을 상상력과 공통감각의 자리로 하고 그것을 싸고 있는 주위의 뇌 조직을 기억의 자리로 간주한다. 

[박명인 미학산책]  상상력의 제상(諸像) Ⅱ
[박명인 미학산책] 상상력의 제상(諸像) Ⅱ

 

지각대상이 통일적인 상을 형성하는 공통감도 부재의 대상의 상을 형성하는 상상력도 모두 정신이 신체와의 결합으로 하는 활동이다. 송과선을 정신의 자리로 한 이유는 뇌의 다른 부분이 모두 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것만이 중앙에 있는 단지 하나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좌우의 눈으로부터 전해진 시각적 자극은 이 선에 의해 수렴하고 대상의 상을 묶으면서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 또한 반대로 정신은 이 송과선을 움직여서 기억의 저장고 안에 깊이 간직하고 마땅한 상을 상기하거나 혹은 부분적인 상을 조합시켜서 공상(空想)에 열중하게 한다. 그리고 천각형(千角形)일지라도 이해를 용이하게 해, 그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마음의 긴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데카르트는 상상력의 활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상할 때는 자신에 의해 지해(知解)된 관념이라든지 감각에 의해 지득(知得)된 관념이 부합되는 무엇인가를 신체에 반응시킨다’.〈데카르트 『제6성 찰』94~95쪽〉 

   ※ 여기에서 송과선이라는 매우 중요한 단어에 대해 기술하고 다음으로 이어가기로 한다. 

   송과선(松果線, pineal gland) : 작은 회색 분비선에서 작은 콩알만한 크기로 좌우의 대뇌 사이에서 척수가 뇌 속에 위치하고 있다. 수목의 잣도 송과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송과선은 고대 이집트의 수메르인이나 바빌로니아의 예술품과 그림 속에 그려져 있으며 우리의 조상이 그 뜻을 알고 참고하고 있다. 기원 전 2,180년 이집트 왕들은 송과선의 활동을 향상시키기 위해 schefa-food를 사용하여 감수성·각성력·직관을 보았다. 송과선은 오랫동안 신성한 지혜가 깃든 것으로 불렸다. 동양의 전통에서는 재삼의 눈이 요가의 단련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쿵다리니 요가는 제삼의 눈 혹은 아지네셔널 차크라의 존재를 가르치고 있다. 두 마리의 뱀은 송과선을 거쳐서 깨운 쿵다리니 에너지를 의미한다. 고대 사슥릿토어인 ‘쿵다리니’는 ‘해명’ 혹은 ‘계발’을 의미하며 제삼의 눈이 각성했을 때 수행자들이 겪는 빛을 말한다. 

이 체험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우치고 내적 영혼에게 대화를 촉구한다. 아지네셔녈 차크라는 제삼의 눈이 맺은 의식의 근원이다. 실제 두 눈은 과거와 현재를 보지만, 제삼의 눈은 장래의 통찰을 밝힌다. ‘아시아나’라는 말은 명령을, 특히 영적인 인도를 의미한다. 에너지를 차크라의 정상에서 송과선으로 넣었을 때 우리 몸의 70조 개의 세포와 직접 닿아 교신하여 근원선계 혹은 신의 방을 불러일으킨다. 송과선은 바로 주된 분비선이다. 두 눈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천리안의 장기이며, 이집트 문명의 ‘라’ 또는 낮은 루, ‘신’의 눈이다. 불교에서는 수행에 있어서 사람의 눈(부처 이마의 점으로 상징되는)을 열고 우리의 영적 내부 혹은 영혼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안티 에이징 효과를 갖는 자연의 항산화 물질인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멜라토닌의 분비는 또 우리의 피부 채색을 돕는다. 의식의 다른 주파수를 만들고 우리에게 현실을 나타내는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사물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일단 그 에너지의 근원(송과선의 활성화와 차크라의 명상)에 들어가면 진정한 그 사람을 발견하고 이 에너지가 왜 있는지를 알게 된다. 바로 모든 것의 에너지이다. 플라톤은, “너희는 나를 기하학 같은 생성 불가능한 학문을 부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혼의 눈이 각성하는 것은 이러한 학문을 통해서 가능하며 그 특별한 눈은 보통 눈의 만 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을 비롯한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도 송과선은 ‘사상차원’으로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애의 대부분을 네덜란드에서 지낸 1650년 생의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플라톤, 소크라데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 송과선에 대해서 ‘영혼의 자리’라며 그것을 둘러싼 많은 모세혈관에 비롯되는 동물감각으로 채워져 있다고 믿었다. 

송과선은 데카르트의 말처럼, 영성의 기능을 담당하는 초점, 그래서 우리를 이성의 오감을 넘어 다중감각으로 이끌어 우주로 퍼져 홀로 그래픽한 고차원의 의식을 일깨운다.〈출처 양서걸의 양성공간〉 상상력의 규칙으로서의 연상의 류형을 거론하자면, 근세의 상상력설에 있어서 하나의 전형이 연상심리학이며, 그 대표적인 이론은 흄(Hume)의 인식론이다. 소위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흄에 있어서 지식은 모두 감각에서 유래한다. 상상은 재생된 관념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는 기억과 대비해서 논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