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한국 현대미술의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온 박종용 작가가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일본 동경 Artglorieux 갤러리 다이마루에서 개인전 '결의 교향곡'을 성황리에 진행중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40여 년간 걸어온 치열한 예술적 여정과, 그 안에 담긴 삶과 철학, 그리고 "점"이라는 근원적 표현을 통한 인간 존재의 기록을 일본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였다.

박종용 “결의 교향곡”-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박종용 “결의 교향곡”-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한국 추상미의 독창적 확장-1953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박종용 작가는 초기에는 한국 전통 회화와 민화 속 서사와 미감을 깊이 탐구하며 화풍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동양의 전통에만 머물지 않았다. 서양 회화의 구성주의와 로베르 들로네의 오르피즘에서 영감을 받아 색채와 점, 선의 자유로운 조형성을 탐구했고, 이를 한국적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양식의 혼합이 아니라, 동서양의 미학적 충돌과 융합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평면성의 탐구였다. 그가 집요하게 이어온 실험은 한국화의 선과 여백, 서양 추상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상반된 세계를 한 화면에 공존하게 만들었다.

박종용 “결의 교향곡”-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박종용 “결의 교향곡”-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점”으로 기록한 생의 여정-박종용 작가의 작품에서 "점"은 단순한 도형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삶을 점으로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매 순간의 감정, 사유, 기억의 조각들이 화폭 위에 작은 떨림으로 찍혀 나간다. 수천, 수만 개의 점들이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화면은 한 인간이 경험한 시간과 존재의 궤적을 담는다.

"제가 하는 건 점을 찍는 것뿐입니다. 그 이후는 자연의 몫이죠."-그의 이 고백은 '결의 교향곡'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다. 흙이 마르며 저절로 갈라지는 순간까지도 그의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흐름과 시간의 작용이 화면 위에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만유(萬有) 결' – 평생의 결심이 빚은 세계-박종용 작가는 2006년 내설악 백공미술관 화운당 아틀리에에서 추상표현주의적 실험을 본격화했다. 10여 년 동안 수없이 반복된 작업과 치열한 탐구 끝에 '결의 교향곡'이라는 시리즈가 태어났다. 2019년 한가람미술관에서의 전시를 통해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시리즈는, 이번 일본 첫 개인전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다시금 울려 퍼졌다.

박종용 “결의 교향곡”-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박종용 “결의 교향곡”-사진제공 김종근 미술평론가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만유 결'이라는 그의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각 점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동일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는 그가 인생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며, 존재의 다양성과 유일성을 동시에 붙잡으려 한 결과다. 작품 속 점과 점은 서로 공명하며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동경에서 확인된 대기만성의 예술-박종용 작가의 '결의 교향곡'은 단지 한 개인전이 아니라, 40년 넘게 꿋꿋이 걸어온 한 작가의 결심이 만들어낸 대기만성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장이었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으며, 평면 속에 담길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시간과 감각을 점 하나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동경에서의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깊이를 일본 미술계에 다시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박종용이라는 이름이 '점의 철학자'로 기억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 순간이었다.

  • ‘빛 결의 교향’ (90×72 cm, Mixed Media, 2024)
    : 무채색 배경 속에 빛의 흐름과 점의 미묘한 교란이 조화. ‘빛 결’ 테마의 기운이 화면을 통해 울림처럼 퍼져나가는 작품.

  • ‘근원 결 오디세이’ (162×130 cm, 100호, 2025)
    : 화면 전체를 점으로 채우고, 관객을 우주의 근원으로 사유하도록 이끄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자연 균열 이후 흙의 흔적까지 표현.

  • ‘인물 결 협주곡’ (53×45 cm, 10호, 2024)
    : 작고 치밀하게 배열된 점들이 인물 이미지를 암시하는 원형 구조로 구성됨. 존재와 기억의 파편을 점으로 음미하도록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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