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현대 미술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미술관은 ‘조용히 관람하는 공간’에서 ‘셀카를 찍고 인증샷을 남기는 공간’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보다 사진 촬영에 더 열중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최근 전시장 입구마다 눈에 띄는 ‘촬영 환영’ 표시는 오늘날 미술이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SNS(특히 인스타그램)가 현대 미술, 그 중에서도 특히 조각과 설치 미술의 미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이제는 진지하게 질문해볼 시점이다.
‘인스타그래머블’ 미술의 등장
최근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다. 이는 ‘인스타그램에서 멋있게 보일 만한’ 작품을 의미하는데, 대체로 밝고 화려하며, 심플하면서도 단번에 시선을 끄는 강렬한 조형성을 지닌다.
이 흐름은 한국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미술 전시들은 대부분 ‘인스타 감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화려한 색감과 형태, 극적인 조명 효과와 공간 연출을 통해 사진 촬영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다.
SNS가 현대 조각의 미학을 바꾸었다는 가장 명징한 예는 한국의 조각가이자 설치 작가, 최정화의 작품이다. 최정화는 이미 1990년대부터 일상적 오브제를 활용한 강렬한 색채의 설치작품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 그의 전시가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그의 대표작인 『민들레』는 다양한 색상의 플라스틱을 이용해 거대한 민들레 형태로 설치한 작품으로, 화려한 색상과 강력한 시각적 자극 덕분에 SNS 사용자들의 필수 촬영 장소로 떠올랐다. 이러한 흐름은 그의 작업 방식을 더욱 강조하게 만들었으며, 전시장과 갤러리 역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를 앞다퉈 초청하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y Mirror Room』
외국 작가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일본의 전설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다. 쿠사마의 대표작 『Infinity Mirror Room(무한거울의 방)』은 사방이 거울로 이루어진 방 안에 조명과 설치물을 통해 무한한 공간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인스타 성지’로 급부상했고, 미국의 MoMA, 런던의 테
이트 모던을 비롯한 유명 미술관들에 설치될 때마다 전례 없는 인파를 기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쿠사마 작품 사진은 수십만 건이 넘으며, ‘SNS에서 유명해지면 실제 미술계에서도 성공한다’는 새로운 성공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좋아요’가 만드는 현대 미술의 딜레마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좋아요’가 만드는 현대 미술의 미학적 가치 하락을 우려한다. 미술이 오직 사진 촬영과 인기를 위한 이미지 소비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의 미술평론가 제리 살츠(Jerry Saltz)는 최근 칼럼에서 “미술관이 SNS의 환영을 너무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작품의 본래 의도와 심도 있는 관람 경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인스타 감성을 좇아가는 미술 전시가 늘어나면서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깊이를 포기한 SNS용 전시’라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SNS가 바꾼 현대 조각의 변화는 과연 미술의 발전일까, 아니면 퇴보일까?
SNS 시대,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
SNS의 미학은 분명 현대 미술과 조각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과거 소수의 전문가와 특정 계층이 독점했던 미술 관람은 이제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는 문화가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고, 미술관을 찾는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미술 작품이 SNS를 위해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SNS가 미술 작품을 소통시키는 도구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요’를 위한 작품보다는, ‘좋은 작품’ 그 자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다시 한번 강조되는 것이다.
현대 미술은 시대와 소통하며 그 형태를 진화시켜 왔다. SNS 시대를 맞이한 현대 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넓은 관객을 품고 있지만, 한편으론 미술의 본래 존재 이유인 창의성, 깊이, 사회적 메시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SNS가 만들어낸 새로운 관객 경험과 소통 방식 안에서, 현대 조각은 예술적 본질과 소통의 균형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예술이 인기를 위해 존재하게 되는 순간, 예술 본연의 가치는 희미해질 수 있다. 반대로, 예술이 새로운 미디어와의 적절한 소통을 통해 대중과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시대의 진정한 성공이다.
이제 미술을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미술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SNS 시대의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미술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미국의 현대미술가,『Jean-Michel Basquiat: Words Are All We Have』(2019), Taschen 출판사
강민수의 '파르락시스'는 조각가와 예술을 통해 형상의 진동을 읽어내는 저널입니다. 번외편에서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반영한 제 생각들을 올려보고 함께 미래 미술세계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