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상상력의 제상(諸像) Ⅰ

   신체를 매개로 하는 정신의 활동전반, 특히 미적 현상에 관계되는 상상력은 물질이 신체의 자극을 받아 활성화되어 보다 폭넓게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의 활동이다. 정신이 신체의 영향을 차단하고 순수하게 사고하려고 할 때는 추상적·일반적·논리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이 신체와의 관계에서 사고하게 되면 구체적·구상적이며, 경험의 저항과 상극 안에서 전개되어 간다. 

[박명인 미학산책] 상상력의 제상(諸像) Ⅰ-사진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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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고에 의해 일반적이며 논리적인 것으로 변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경우에는 상상력의 사고가 가지는 일반성이나 논리성은 독특한 것이 된다. 신체에 의해 사유하는 능력은 상상력의 활동에 의해 다방면으로 갈라져 복잡하게 된다. 구체적 사유의 전형은 물질의 상(image)이며, 일반적으로 ‘상상력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힘’이다. 예를 들면, 곁에 없는 친구의 얼 굴을 생각하는 경우이다. 친구의 얼굴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되어 기억이 유지되고 있지만, 그때의 상상력은 경험의 버팀목이 없는 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근거가 없는 존재를 공상(空想)의 산물이라고 하고 이러한 상상력의 활동을 공상이라든가 공상력(fancy, fantasy)으로 구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상력은 항상 상을 표상하는 힘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떤 소설가가 스토리의 조립이나 상황설정, 인물의 성격이나 말 등에 관해서 박진감 있는 존재감을 보이거나 의표를 찌르면서 강한 설득력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요컨대 허구의 뛰어난 기교 외에는 세부적으로 시각적인 상을 표상할 필요는 없다. 현실생활에서 이러한 허구의 창출에 상당하는 것은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거나 남을 배려하거나 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에도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이렇게 시각상으로 떼어버리는 것은 활동으로서의 상상력만큼 제한하지 않는다.

   ‘이미지’에 대해서도 감각상을 표출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미국에 대한 이미지라고 하면 성조기나 그랜드케년이나 카우보이 모자 그런 것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정치력이나 경제력, 사회제도, 미국인들의 행동 양식에 관한 이해를 하게 되는 경우이다. 상상력은 또한 항상 부재의 대상에 관한 사유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흉내를 보고, 그것이 새를 나타내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상상력의 활동이지만 이때 상상력은 허공에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대상이 선택되고 있어서 그 대상 ‘안에’ 다른 존재를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와 회화를 보고 재현 대상을 파착(把捉)할 경우를 구별해야 할 까닭은 없다. 그림물감이 칠해진 화포로부터 나부나 군마를 나타나게 하는 것은 상상력이다.〈프랑스의 화가 모리스 드니의 말에 의하면, ‘회화는 그 본질에 있어서, 군마나부 혹은 어떠한 일화(逸話)이기 전에 일정한 질서와 함께 모아진 그림물감이 덮어진 평면이다’(M Denis, Thories-du symbolisme au classicisme, P.33)〉.

   이것은 ‘신전통주의의 정의’라는 제목으로 ‘예술과 비평 (Art et critique)誌’에 1890년 8월 공표된 아포리즘(aphorism)의 모두 말로써 추상회화의 기반을 표현한 말로 자주 인용되었다. 더욱 진일보하면서 현실의 지각에도 상상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것은 인식론에 있어서의 칸트의 통찰이다. 이러한 다의성으로부터 교훈이 있다. 그것은 상상력을 생각할 때 상 혹은 상적인 것(프랑스어 imaginaire)의 문제와 혼동하지 않도록 하거나 적어도 한정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사르트르는 L’Imaginaire(像的인 것), 1940(상 상력의 문제)를 『상상력의 현상학적 심리학』부제로 제출했다〉 ‘신체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라든가 ‘구체적’이라는 것은 상이나 상적인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상이나 상적이지만 범위 안에서 생각하는 한, ‘미국의 이미지’는 물론, 칸트적인 지각과의 상상력 활동이나 예술작품의 어떤 표정을 포착하는 것 등이 누락될 우려가 크다. 상상력의 고전적 개념으로 볼때, 신체에 매개된 사유는 결코 상식적인 것이 아니며 특이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이론에 준거하는 것이지만, 데카르트의 역설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정통적인 개념을 계승하면서 근대가 각양각색으로 이론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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