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문양, 시간의 감각으로 피어나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 원장 장동광)이 주최하는 ‘2025 KCDF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신진작가 부문에 선정된 도예작가 권혜인(KWON Hyein)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Portrait of Time)'이 7월 9일부터 8월 3일까지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권혜인 작가가 문학과 고미술에서 길어 올린 시간의 서사를 도자언어로 풀어낸 실험적이고도 시적인 공간이다.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착안한 ‘의지하지 않은 기억’ 즉, 무의식 깊은 곳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감각의 순간을 도자 조형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손끝에서 깨어난 기억은 형태를 입고, 빛을 품으며, 새로운 시간의 초상을 이룬다.

권혜인(KWON Hyein)작가 작품-저용량-사진제공 KCDF
권혜인(KWON Hyein)작가 작품-저용량-사진제공 KCDF

 

권혜인은 박물관 유물에서 볼 수 있는 고대 도자기와 장신구의 형상, 문양 등에서 모티프를 얻어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주제를 탐구해왔다. 그는 특히 선조들의 세계관, 즉 생과 사의 순환과 조화라는 가치에 주목하며, 제기와 태항아리 등 상징적인 기물을 쌓아올려 작은 세계로 구축된 오브제를 창조한다.

작품의 표면에는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 문양, 덩굴, 거북, 구름, 광배, 연꽃 등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부조되며, 유약의 번조 과정에서는 청자유 또는 진주광택 유약이 조각의 깊이에 따라 미묘하게 빛을 발산한다. 물레 성형한 기물에 정교하게 문양을 새긴 후, 유약의 번짐과 결정 효과를 통해 작가는 ‘빛의 표면’을 설계하듯 조형한다. 이로써 물성과 상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의 층위를 형상화한다.

작가에게 전통 문양은 단지 장식적 요소가 아닌, 감각의 언어이며 시간의 단서이다. 그가 구현하는 도자기는 서사적이며 동시에 감각적이다. 구술로는 담기 어려운 내면의 풍경과 감정을 조형의 언어로 대체하며, 관객과의 직관적 교감을 유도한다.

권혜인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자들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일깨우며, 유한한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전시는 직관적인 동선과 자유로운 감상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전주희 공예진흥본부장은 “권혜인 작가는 역사적 기호와 상징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동시대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실험성과 감성이 결합된 도자 조형의 새로운 흐름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혜인의 '시간의 초상'은 도자를 매개로 한 시간과 기억, 물성과 정신의 감각적 대화를 제안하며,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한국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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