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형상의 틀을 넘어서 정신의 울림을 구축하는 색면의 세계, 그림이 더 이상 대상의 재현이 아닌, 내면 세계의 표상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진정한 예술’을 마주한다.
화가 이순자수산나는 바로 그러한 전환의 주체로, 추상회화의 심미적 완정성과 실험정신을 동시에 갖춘 작가다.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HB갤러리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 '색면 콤포지션의 백미'는 이순자수산나의 회화적 여정이 도달한 하나의 정점이자, 내면의 형식(內形式)이 발화하는 자유의 장이다. 590여 회의 단체전과 25회의 개인전을 통해 예술의 지층을 촘촘히 다져온 원로작가 이순자수산나는, 이번 전시에서 그간의 구상적 완성 위에 펼쳐진 새로운 추상의 지평을 보여준다.

구상의 정점에서 추상의 길로-이순자수산나는 백석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후, 사실적 재현의 깊이와 형식미를 기반으로 한 구상 회화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그의 구상회화는 평행, 대비, 대칭, 비례의 수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한 인물, 풍경, 정물로 구성되며, 정밀한 거리 원근법과 색채 조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하지만 그는 어느 시점에서,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자연은 인간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은 예술이라기보다 복제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예술은 창조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사유의 전환은 추상 회화로의 진입을 예고한다.

그는 더 이상 사물의 외양을 재현하기보다, 면과 색의 관계, 심리적 울림, 정신의 리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형상의 해체가 아닌, 형상을 넘어서는 고유의 형식 창출이다.
색면의 융합, 자유의 감각-이순자수산나의 추상회화는 단순한 ‘무형상’의 반복이 아니다.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색면과 색면이 부드럽게 혼색되며 경계 없이 융합되는 방식은 고도의 색채감각과 구성력, 그리고 직관적 묘사의 조화를 전제로 한다. 그가 구사하는 ‘컬러 서퍼스 콤포지션(color surface composition)’은 감각적 표면의 유희가 아닌, 심오한 내면 질서와 목적성을 지닌 조형 언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대표작들은 롤러 기법에 의한 색면 작업이 중심을 이룬다.

롤링과 중첩, 번짐과 소멸의 물성 실험은, 그의 내면적 심미감각이 어떻게 화면 위에 구체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명확한 도형적 경계가 아닌 자연스러운 색면의 융화는 감성적 울림을 자아내며, 추상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미적 감득의 가능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추상의 정통성과 예술의 윤리-미술평론가 박명인(한국미학지음회 회장)은 이순자수산나의 작업에 대해 “실기 능력에 기반한 정통 추상회화의 모범사례”라며, 무형식과 무의미로 채색된 일회성 추상들과는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고 평한다.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는 드로잉, 장미, 풍경, 설경, 인물화, 수중생태 등 다양한 주제의 구상 작업을 거쳐, 그 토대 위에서 추상으로 이동한 보기 드문 원로작가다. 따라서 그의 추상은 기교의 회피가 아닌, 의식된 비약이며, 기성 형식에 대한 창조적 의문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는 추상을 통해 다시 구상으로 돌아가는 진정성을 강조한다.
“추상은 구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상의 진실에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자유미’가 지닌 내면적 질서-이번 전시는 단지 형식의 변화가 아닌, 예술의 본질을 향한 태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자유롭게 흘러내리는 색면, 그러나 그 안에 자리 잡은 질서와 목적성은 예술의 윤리성과 조형의 엄밀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이순자수산나의 추상회화는 무작위의 반복이 아닌, 내면의 논리와 감성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

면과 색이 빚어내는 조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유와 감각이 만나는 지점이며, 이는 곧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상태이자 ‘백미(白眉)’다.
이순자수산나는 단지 형식을 바꾼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그림을 통해 묻고 있다.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이순자수산나 전-‘색면 콤포지션의 백미’, 형상의 너머에서 피어나는 자유미-사진제공 박명인 미술평론가

복제와 속도, 효율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면과 색으로 사유하고 정지하며 응시하게 하는 회화는 보기 드문 수행적 깊이를 지닌다.

그녀의 그림은 말한다.
형상은 사라지지만, 본질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본질은, 결국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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