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의 '담대하게' 청주 중견작가의 현주소-김지현, 문상욱, 선환두, 이돈희
김종근 (미술평론가)
2016년 개관 이래 청주시립미술관은 명실상부한 청주의 유일한 공립미술관으로서 그 역할과 기능을 다 해왔다. 훌륭하고 역량 있는 지역 작가들을 발굴하여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번 시립미술관 기획전 《담대하게(Act Boldly)》는 그런 전시의 대표적인 기획전시로 손꼽힌다.
특히 김지현, 문상욱, 선환두, 이돈희 이 4명의 중견작가는 각자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들의 작품세계를 통하여 4명의 작가가 가진 담대한 작가 정신을 청주미술의 위상으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통점은 1950년대 작가들이라는 동세대 작가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 작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훌륭한 작가 세계는 물론 미술 후학을 위해 교육적인 측면에서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김지현 작가는 추계예대에서 정년퇴직 후 작가는 문의면 두모리 산속 조용하고 고즈넉한 작업실로 돌아와 박차를 가하며 엄청난 양의 작업으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최근 작업 모두를 무제로 명명하면서 이를 통해 언어와 개념을 넘어 형상과 색의 순수한 감각에 몰두하였다.
그는 대상(object)과 의식 사이에서 생성되는 보편적 또는 지성에 의한 의미 부여를 억제하고 대상을 직관하는 작업으로 오랫동안 현실과 이상, 의식과 무의식 등 이분법적인 세계를 초월하려는 욕망을 날개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유와 갈등, 고민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강렬한 본능의 표현이기도 하다.
형태와 색채가 빚어내는 사유의 공간으로 요약되는 많은 양의 작업들은 단순하게 대작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그가 해왔던 작업의 변화와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이전에 리얼리티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형태와 공간에 대한 해석과 간결한 색채의 구성이 압도적으로 돋보였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작가가 인식하는 현실의 변화와 시각이 중요하게 간주 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렇게 작가는 굳어지는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그것에서 벗어나 새 영토에 도달하길 열망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비로소 진리에 눈뜨게 된다는 함축적인 의미와 메시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특징적인 측면은 간략하게 그리고 구성적인 회화 스타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즉 이상세계에 대한 갈망에서 어떤 진실을 발견한 듯한 감정이 깊게 스며들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그의 공간은 극도로 단순한 공간을 형성하면서 붉은 색채의 형태들이 화면을 지배한다. 여기서 특히 색채와 공간 그리고 수묵의 굵은 형태는 그 구성의 조화로움에 중심에 바탕을 이루고 있다.
즉 작업에서 이미지 ‘상’의 집착을 놓고 해체하는 마치 불교의 空한 율법과 이치를 이해하듯 작품으로 풀어낸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작가의 발언처럼 멈추어진 ‘상’의 거푸집을 버리고 나면 거기에 날 것 같은 움직이는 ‘상’과‘색’의 본디가 존재한다는 작가의 철학이며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찾아 탐닉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일컬어 마치 건축물을 위한 ‘거푸집’에 비유했었다. 어떠한 ‘상(像)’도 언어밖에, 보편적 이념이나 개념 밖에, 그 실체가 존재하며 거푸집을 버리고 나면 거기에 시작이 있고, 기본이 있고,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거푸집을 버리고 본디로 돌아가려는 것이 최근작들이다.
우리가 김지현의 작품에서 형태와 색채를 통한 회화의 아름다움, 바로 여기에 그의 새롭고 철학적인 예술세계를 발견하는 이유이다.
선환두는 동양화를 전공했으면서도 전통적 동양화를 탈피하여 ‘문(門)’을 중요한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문의 열고 닫힘을 인간의 탄생과 죽음으로, 그 안에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미 주제 자체에서 그 독창성과 자기만의 은유적인 시각이 돋보아는데 이 전통 한옥의 문살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10여 년 이상 몰두해와서 그 일관성과 테마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의도는 전통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창문의 문살 하나하나에 생겨난 형상에서 “지나온 세월이 보낸 만남과 상처의 흔적이 세상에 아름답게 새겨지는 듯” 만들고 있다. 작가는 문짝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추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기쁘고 희열에 사로잡혔다고 고백 한 바 있다.
이것은 공통으로 “세월을 품은 소나무의 고풍스러운 향기와 세월이 지나도 쫀득쫀득한 한지의 탄력성을 내 가난한 표현력이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조바심을 느끼는 것조차 행복”했다는 작가의 발언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전통과 기억 그리고 향수의 단면이 명확하게 확인 된다.
특히 문틈으로 엿듣는 행위는 인간의 지적 탐구에 대한 욕망임을 작품을 통해 은유적인 이야기와 이 문을 통한 삶의 기쁨과 슬픔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도 이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작가정신이자 키워드이다.
작품의 표현기법도 또한 흔하지 않게 새롭고 모험심이 돋보이는 입체적이면서 콜라주 기법으로 그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점도 이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특히 인간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예술적인 작업인 문을 통하여 정겹고 따뜻하게 깊이 있게 소재로 부각시켜 표현한 것이 이채롭다.
문살을 작업하면서 문의 열고 닫음에 치열했던 삶의 마침을 선환두 작가는 문살을 회화의 기본 소재로 그와 조형적으로 분위기로 어울리는 재료와 형태로 삶을 표현한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색채의 변화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 세월이 새긴 만남과 상처의 흔적을 우리에게 추체험하게 하는 이 작가만의 매력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보여주고 있다.
문상욱은 충북대학교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을 교사로 재직하다. 사진으로 전향, 중부대학교에서 사진영상전공을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색적인 작가이다.
그의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본질적 연결성에 관심을 두고 아울러 자연의 질서와 구조를 주제로 탐구한 ‘프랙털’을 작품 속에서 집중적으로 포착 해낸다.
또한 재료도 기본적으로 사진, 동판, 알루미늄판 등을 활용하여 풍부한 사진 이미지를 컴퓨터 프로그램과 AI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도전적인 작가 스타일이다.
그래서 탈장르화는 물론 현대미술에서도 다분히 전위적인 작품세계를 무한히 개척하는 실험적인 작가로 판단된다.
어떻게 보면 사진과 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21세기의 토탈 아티스트적인 기법으로 잠자리를 찍은 디지털 이미지를 레이저 커팅으로 참신하고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문상욱은 2019년부터 ‘카오스와 프랙탈’시리즈부터 사진을 기본 바탕으로 복제와 이동, 삭제와 변형을 거쳐 3차원의 조각과 설치물로 구현되는 실험적 매체의 보기 드물게 용감한 예술가로 평가된다.
그 배경이 제주도인 시리즈도 주목을 끌고 있다. 그 배경이 되는 장소는 제주 중산간에 넓게 분포한 곶자왈로 관광명소이다.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쳐 만든 곳으로 바위덩어리로 쪼개져 요철지형이 생겨 덩굴식물, 가시덤불, 고사리 등이 뒤섞여 원시림의 숲을 이룬 최고로 멋진 풍광의 숲이자 관광지이다.
작가는 일찍이 그 장소에 빠진 과정과 배경을 ”'자연의 허파'로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수한 생명체를 품고 있는 땅이다. 나는 그곳에서 내 숨소리를 들어보고자 했다”고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작가는 그곳에서 블루라는 렌즈와 색채로 곶자왈을 그만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파란색은 젊고 희망적이며 안정된 색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새파랗게 질리다” 처럼 불안하고 공포스러우며 괴기하고 고독과 외로움의 이미지를 연출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유는 불안한 블루 곶자왈이 희망적이며 안정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작가의 강렬한 의지와 실험정신이 그 기본적인 배경이다. 우리는 그의 미스터리한 색채에서 이미 강렬한 인상은 물론 어떠한 심정으로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시선과 제스츄어가 전율처럼 다가온다.
그리하여 작가의 감성과 열정이 그대로 블루라는 컬러의 `블루 곶자왈'이란 실제 풍경에서 볼 수 없는 파랑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원시림 같은 곶자왈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사진 이상의 디지털 아티스트의 새로운 미적 세계의 맛을 느끼게 한다.
곶자왈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제주도의 미래가 없다는 작가의 투철한 휴머니티와 정신과 예술철학,그리고 인간미를 리얼하게 나타낸 참신한 작품으로 기록 할만 하다.
이돈희 조각가는 조각가로서 강동대학교에서 퇴임하기까지 인재 양성에 힘쓴 교육자인 동시에 충북미술협회장과 청주미술협회장을 역임한 조각가이다.
이 작가의 우선적인 특징은 보통 동일한 주제와 테마를 고집하는 것이 보통 작가들의 스타일이자 경향인데 이돈희작가는 독특하고 고집스럽게 같은 유형의 작품을 반복하지 않는 뉴스타일에 깊은 흥미를 느낀 작가이다.
그것은 재료에서도 확인된다. 돌에 이어 예술적 영감을 살려내는 재료로 ‘나무’를 선택하는데 그 나무의 종류는 느티나무, 참죽나무, 밤나무 등 종류의 선정에서부터 보관까지 조형 작업에서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는 작업을 지속 해왔다.
작품의 형태나 유형에서 확인이 가능하듯이 이돈희 작가는 재료를 깊이 관찰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재료가 지니는 본래의 형상을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마치 로댕이나 미켈란젤로처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랑과 고뇌, 상실감 등 작가로서의 모든 감정과 정서를 자연물을 통해 영감을 얻고 작업을 전개한다.
매우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는 작가는 조각에서 조형의 형태에 크게 주목하면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감정을 다양한 추상형태로 옮겨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이 작가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그러다보니 공간에 잘 어울리는 형상과 재료를 신중하게 선택하는데 그가 특별히 나무나 돌, 청동과 같이 영구성이나 세월을 고려한 재료를 우선적으로 고르는 필연성이 있다. 그 다음으로 작가는 그 작품들이 인간과 자연에 잘 어울리는 화해로운 형상을 제작 해낸다. 이 부분이 그가 조각가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창조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돈희 작가의 작품 속에는 부드러움과 생명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조화로움을 만들어내는 자연 속에 인간이 어우러짐을 테마로 잡아 인간에게 있어 조화의 위대성과 가치를 최고의 이상향으로 하고 작업을 완성 한다.
그래서 조형물의 작품도 따스한 자연의 숨결이 배어 나오도록 부드러운 곡선과 구성적인 리듬이 풍겨나는 작품들에 중요한 무게를 두고 있다.
조각의 중심에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조각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작가는 스스로 시각적 느낌과 정신적 에너지가 어우러진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를 최고로 중시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주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 역시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묘사의 유형 작품 보다는 조형적인 대상에 느낌과 이야기가 충실하게 작품속에 응축되어 내용을 표출한다.
이것이 사물이 지닌 본질 추구의 표현 방식으로 직선보다는 곡선을 많이 사용하는 작가의 창작의 비밀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돈희의 작품은 부드러운 선과 형태가 빚어내는 간결한 볼륨에 대한 생명의 연출자라는 타이틀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