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감정의 결, 시간의 얼룩 위에 그려진 관계의 리듬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중구 소공로에 위치한 금산갤러리에서는 오는 2025년 7월 18일(금)부터 8월 2일(토)까지 김지훈 작가의 개인전 '녹화중 Rusting'이 열린다. 오프닝은 전시 첫날 오후 5시에 개최되며, 이번 전시는 김 작가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연작 ‘Dancing Line – Sun and Moon’을 중심으로, 회화의 시각적 언어를 넘어서 인간관계, 감정, 시간의 흐름을 복합적으로 탐색하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김지훈은 회화를 기반으로 사진,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인간과 사회, 감정과 구조 사이의 다층적인 긴장을 시각화해 온 작가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녹화중 Rusting》은 ‘산화’라는 물리적 현상과 ‘무뎌짐’이라는 비유적 감정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금속이 산화되어 변색되는 것처럼, 관계와 감정도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변화하고 퇴색된다는 점에서 작가는 ‘녹슬다’는 단어를 오늘날의 사회적 감정으로 확장해 해석한다.
이번 신작에서 주목할 점은 선에서 도형으로의 전환이다. 김지훈은 기존의 연작 ‘댄싱 라인(Dancing Line)’에서 선의 리듬과 충돌을 통해 인간관계의 역동성을 표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원형, 삼각뿔 등 구체적인 도형이 등장하며, 시간성과 감정의 흐름이 더 정제된 조형으로 나타난다. 해와 달, 즉 자연의 순환과 감정의 리듬을 상징하는 이 도형들은 화면 위에서 관계의 구조를 시각화하며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러한 작업은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성 미학(Relational Aesthetics)’과도 닿아 있다. 김지훈의 선과 도형은 완결된 형상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방된 구조 안에서 존재한다. 선들은 교차하고 단절되며, 도형은 서로를 감싸거나 밀어내며 관계의 거리, 밀도, 긴장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김지훈의 회화는 더 이상 고립된 시각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이 상호작용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전의 시그니처였던 ‘드리핑 선’을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면’과 ‘질감’에 집중했다. 물감의 중첩과 산화된 화면은 감정의 시간성과 기억의 흔적을 담아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감정을 ‘관찰’하는 시선에서 나아가, 감정의 내부로 들어가 ‘경험’하고 ‘표현’하는 보다 주체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건수 미술평론가는 “김지훈의 화면 속 도상들은 완전하게 고정된 궁극의 형상으로 존재하려 하지 않고,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한다. 이는 회화가 공간예술이 아닌 시간예술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한 바 있다. 김지훈의 작업은 한국 전통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겹과 층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동시대 미학의 실천을 구현한다.
2,000여 가지 색을 활용한 다층적 색면, 빛의 반사와 그림자의 레이어, 그리고 액션 페인팅 기법을 응용한 화면 구성은 관객에게 단순히 ‘보는 회화’가 아니라, 감각과 감정으로 ‘체험하는 회화’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회화의 범위를 조형적 표현에서 감정적 서사, 관계적 구조로까지 확장시키는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김지훈 작가의 '녹화중 Rusting'은 오늘날 추상 회화가 다룰 수 있는 감각의 폭과 개념의 깊이를 보여주는 한편, 인간관계의 균형과 충돌, 계획과 우연이 교차하는 삶의 리듬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선과 색, 시간과 감정이 겹쳐진 이번 전시는 회화라는 장르가 감정과 사회를 탐색하는 동시대적 실천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