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프리즈 서울 2025가 내다보는 것은 단순한 전시 이상의 비전이다. 아시아 전역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각자의 독특한 언어로, 역사와 전통, 그리고 현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번 ‘컬러 앤 루인스’ 해외특집 기획은 후기 자본주의의 파괴적 충동, 퀴어 정체성, 그리고 재료와 기법의 문화적 유산을 중심에 두고, 전통적 접근과 미래 지향적 시각이 공존하는 전시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구샤오핑 | 레오 갤러리 (C13) – ‘Gracefully Futile’
중국 작가 구샤오핑은 미국식 색면 회화의 대담함과 전통 중국식 먹물의 섬세함을 동시에 구현한다. 리넨 위에 정교하게 그려진 반복적인 선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 동서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선(禪)의 영성을 은유하며 현대 디지털 과부하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다. 그의 ‘Gracefully Futile’ 프로젝트는 전통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미래를 향한 해법의 모색이라 할 수 있다.
리엔 쯔엉 | 갤러리 꾸인 (B21) – ‘아시아 미래주의의 서사’
호치민시 갤러리 꾸인에서 선보이는 리엔 쯔엉은 어린 시절 난민 신분에서 출발한 작가로서,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과 융합을 작품에 녹여냈다. 전통 회화 기법과 고풍스러운 일본 직물의 활용은 그녀만의 ‘아시아 미래주의’를 구성하며 억압, 이주, 그리고 신체 변화를 통해 기억과 정체성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그녀의 작업은 잊혀진 역사와 미래의 가능성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다.
프라팟 지와랑산 | 삭 갤러리 (A14) – ‘아시아 가족 초상 2’
태국 출신의 프라팟 지와랑산은 도예와 유리 제작의 영역을 넘어 콜라주와 네거티브 필름을 직접 다루며, 디지털과 AI 기법을 접목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그의 ‘아시아 가족 초상 2’는 태국의 역사, 기억, 정치, 그리고 이주 문제를 복합적으로 탐구하며 이미지와 정체성 모두가 어떻게 훼손되고 변형될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암시한다. 그 안에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의 잔향과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상이 공존한다.
자데 파도주티미 | 이시이 타카 갤러리 (A32) – 경계를 넘나드는 캔버스
도쿄의 타카 이시이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자데 파도주티미의 개인전은 일본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비디오 게임, 패션 등 다양한 현대 문화의 요소들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런던에서 자라난 그녀의 캔버스는 고전적 회화 기법과 현대적 소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개인적 기억과 대중문화 속에서 자아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미 베니스와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녀의 작업은 전통 예술이 미래와 융합될 때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수진 | 이유진 갤러리 (C18) – ‘뇌의 바다’
한국 태생, 뉴욕 기반의 정수진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괴물’이라 칭한 심령적 존재들을 통해 무질서와 혼돈 속에 깃든 내면의 풍경을 탐구해 왔다. 이유진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녀가 끊임없이 질문해 온 존재의 근원과 그들이 사는 혼돈의 영역을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던진다. 전통적 소재와 현대적 감각이 만나 만들어내는 강렬한 이미지들은, 한편으로는 옛 기억의 회상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를 반영한다.
쳉 치엔잉 | 키앙 말랭 (A30) – ‘짜기’
대만 출신 작가 정첸잉은 홍콩 갤러리 키앙 말랭에서 전통 기법과 현대적 퀴어 감성의 대담한 결합을 선보인다. 종이, 잉크, 미네랄 안료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그의 ‘짜기’는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전통적 미학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담론과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리아 하사비 | 브리더 (A12) – 미지의 반사면
키프로스 출신의 마리아 하사비는 아테네 갤러리 더 브리더에서 단독 전시를 개최하며, 사진, 조각, 퍼포먼스의 요소들을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반사 표면을 활용한 그녀의 설치 작품은 왜곡과 조작을 통해 자아의 비현실적 혹은 반전된 모습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전통적 미학과 새로운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충돌을 체험하게 한다.
임성구 | 드로잉룸 (F06) – 기억을 고치려는 시도
서울의 드로잉룸 갤러리가 후원하는 임성구 작가의 개인전은 어린 시절의 악몽, 동화, 그리고 책 속 삽화를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언어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할머니의 허물어진 집의 파편을 모티프로 한 그의 작품은 전통적 가족 서사의 잔향과 함께 현대 사회에서의 정체성 회복을 시도하는 다층적 내러티브를 담아낸다.
사이드 코어 | 파셀 (F03) – 도시와 공유되는 익명의 이야기
익명성을 무기로 한 도쿄 예술 집단 사이드 코어는 파셀을 잇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도시의 공유 공간과 보이지 않는 사회 기반 시설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도자기, 건축 자재, 표지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전시된 작품들은 도시의 스트리트 아트와 주변 환경의 미학을 재조명하며, 전통적인 도시 생활의 잔향과 현대적 실험정신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진 정 | 상희웃 (F08) – 건축 환경의 미래 잔상
한국의 유진 정은 서울 상희웃 갤러리에서 도시와 사회의 내부 구조를 파헤치는 설치 작품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폴리스티렌 폼,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등 산업적 재료를 통해 미래의 폐허와 그 속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그의 작업은, 전통 건축의 잔재와 새로운 도시적 형태의 상호 작용을 예술적 언어로 풀어낸다.
결론: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미술의 시간
프리즈 서울 2025는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 전통적인 기법을 토대로 미래를 향한 도전을 펼치는 장이다. 이번 ‘컬러 앤 루인스’ 기획은 고정된 형식 속에서도 변화와 혁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며, 과거의 미학이 미래의 비전을 자극하는 순간들을 재조명한다.
본 기자는 이번 행사를 통해, 전통과 혁신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예술적 서사를 만들어가는지를 면밀히 관찰할 예정이다. 역사와 전통에 뿌리내리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들의 열정이 담긴 이번 전시는, 국내외 미술작가와 전시 관계자, 그리고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