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태도론 Ⅴ
이것은 interest의 두 가지 의미의 차이를 비판한 것이지만 칸트 자신은 아마 이 주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칸트 자신이 uninteressiert라는 글을 ‘무관심적’의미로 사용하고, 대상의 관심 계기를 인정하고 있다.(제2절 KU7) 또한 같은 용어는 W. Traugott Krug, System der Theoretischen Philosophie의 제9절에 이용되어 그것에서 칸트의 소설(所說)과 함께 헤르더의 비판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양자의 논술에 있어서 역점을 두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비판이나 수정을 받아들이면서 칸트 이후에는 무관심성이 관심을 압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미적 관심은 존재가 희박한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관심개념은 무관심개념 이상으로 예술체험에서 중요한 특질을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대의 미국에 있어서 미적태도의 개념이 논쟁이나 논의의 중심적 주제가 된 것은 1960년 경이었다.
이 개념의 유효성과 중요성을 주장한 대표자로는 스톨리츠(Jerome Stolnitz)를, 그리고 그것을 부정한 대표자로는 딕키(Dickie)로써 각각의 소설(所說)을, 단지 부정설에 중점을 두어 소개하고 있다. 스톨리츠는 미적태도를 미적체험이 성립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각지(覺知, awareness)가 어떠한 대상 자체만을 위해서 무관심적인 공감의 어떤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관상하는 것이다’.〈J Stolnitz, Aesthetics and Philosophy of Art Criticism p. 35. 이것은 교과서적인 구성의 개론으로서 저자는 제1부 ‘미적 체험’을, 미적 태도와 미적 체험의 두 장으로 거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관심성을 중심으로 하면서 ‘공감의 어떤 sympathetic’과 ‘그것 자체만을 위해서’라고 덧붙여 말하면서 미적관심의 계기를 받아들이고 이 태도가 대상을 선택하지 않는 것(어떠한 대상)을 명언(明言)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딕키의 비판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무관심적인 주의가 지각하는 것만을 예술작품의 ‘미적으로 관여적인 것’〈관여성 (relevance; pertinence)은 체험이나 해석에 있어서 주목하고 있는 것을 적절히 부정하고 있다.〉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의심, 둘째는 작품을 판정하는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작품에 접하는 것을 비미적인 것으로 하는 비판, 셋째는 미적 가치를 도덕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에 관한 비판이다.〈Dickie, art. cit, pp. 61~64. 딕키의 비판에 대응하는 스톨리츠의 설은, ‘관여성’에 대해서는 위에서 거론한 장의 제5절에 있으며, 비판에 관해서는 제14장 2절에 있다.〉
이 세 가지는 동일한 사상에 입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스톨리츠에 의해 대표되는 미적태도설이 작품에 대한 미적인·무관심적인 태도를 규범으로 체험이나 해석에 채우고 미적이지만 ‘옳은’ 본연의 자세를 규정하려는 것에 대해서 딕키는 체험의 현실에 입각해 한정을 막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딕키에 의해 미적 태도설의 배경된 이 논쟁은 칸트 미학의 입각점(笠脚點) 바로 그것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딕키는 미적 태도성이라고 구별하면서도 ‘미적인 것에 의해’ 미적 체험을 규정하는 비어드슬레이(Beardsley)를 비판대상으로 60년대 후반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전개되었다.〉 칸트는 미적인 판단을 진의 인식이나 선의 판단으로부터 구별함으로써 이론을 구축했지만 여기에서도 비평이라는 일종의 인식형태와 도덕이 표적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