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상의 아트힐링] 'Blue Summer'

여름이 되면 많은 이들이 휴양지를 찾아 도시와 일상을 떠난다. 그런데 이러한 휴가철의 뜨거운 열기가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우울의 이유가 된다. 일반적으로 여름철의 ‘blue’는 푸른 바다를 떠올리게 하지만, 심리적으로 ‘blue’는 우울을 상징하는 빛깔일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개 어두컴컴한 자녀의 방에서 커튼을 걷고 햇볕을 쬐게 하려 하고, 또 자녀에게 방에 누워만 있지 말고 어디 여행이라고 가자고 다그친다. 그러나 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이들이 커튼을 자꾸 치는 이유는 햇빛의 밝음이 눈과 피부를 관통하여 찌르듯이 아프기 때문이다. 주변의 밝음을 통해 어두운 자신의 내면이 상대적으로 더욱 아프게 지각되는 것이다. 그러니 봄이나 여름에 오히려 우울한 이들이 많다. 이를 계절성 우울이라고 하기도 한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경수 교수팀은 2015년 평균연령 34.9세인 552명을 대상으로 하여 수면 시간과 기분, 사회활동, 체중, 활력, 식욕 등의 6개 항목을 묻고 가장 나쁘게 느껴진 달과 계절을 평가하는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 중 약 16%가 날씨로 인한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를 우리나라 인구로 환산하면 약 800만 명이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우리나라의 계절성 정서장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일단 계절성 정서 장애는 겨울형 계절성 정서장애, 여름형 계절성 정서장애로 나눌 수 있는데 여름형 계절성 정서장애는 주로 여름에 우울증이 나타나고 가을, 겨울에는 좋아지는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여름형과 겨울형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안이 높아지고 기분이 가라앉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동일하다.

백지상, The Blue Summer 1, 72.7x 53.0, Acrylic on canvas, 2025
백지상, The Blue Summer 1, 72.7x 53.0, Acrylic on canvas, 2025

 

우리의 내면에는 사계절과 그리고 다양한 빛깔들이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블루, 레드, 퍼플 등
우리가 살아낸 계절들과 견뎌낸 감정들은 다양한 형태와 색채로 표현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여름과 블루가
내면의 우울과 열정이 만날 때

피할 수 없다면
서로를 껴안고 스며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BLUE는 SUMMER에게 한 줌의 냉기를
SUMMER는 BLUE에게 한 줌의 온기를 줄 수도 있다.
-작가노트 중에서-

우울한 이의 머릿속은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에 비유될 수 있다. 자려고 누우면 생각을 쉴 수 없어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생각들은 주로 ‘~해야 한다’라는 강박적이고 당위적 사고로 이어지다가,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잔인한 판결로 이어진다. 즉, 모든 생각들은 마치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닿듯이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나는 쓸모없다'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울한 이들의 마음속을 엿보고 형상화한다면 아마도 다음의 이미지가 될 것이다. 생각들은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지며 우울(blue)은 깊어진다.

The Blue Summer의 부분 이미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울한 생각을 형상화하였다.
The Blue Summer의 부분 이미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울한 생각을 형상화하였다.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우울한 이들에게 언제 행복했었냐고 질문한다면 의의로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않아도, 아무 생각 없이 어딘가에 몰입했던 순간임을 알 수 있다.  생각을 통해서 생각을 벗어날 수는 없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자신에 대한 부정적 생각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그냥 생각을 멈추고, 전환하고,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 그렇게 무능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이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못 이기는 척 가족이나 친구의 손에 이끌려 잠시 어디론가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제나 우리를 받아주는 자연의 치유력, 즉 햇빛과 파도, 녹색의 잎들이 마음속의 블루에 스며들 때까지.

The Blue Summer의 부분 이미지, 작가가 우울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The Blue Summer의 부분 이미지, 작가가 우울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백지상 프로필

상담심리학 박사. 시인화가. 미국 오이코스 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치유예술작가협회(HAA)회장.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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