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손’에서 ‘Yellow Pulse 95’까지, 기호노동자의 시간을 되묻다
[아트코리아방송 = 황성욱욱 기자]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2025년 7월 9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되는 KIWIKIM 작가의 개인전 '기호노동자의 잠의 실종'은, 오랜 시간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온 작가의 이력과 파인아트 작가로서의 예술적 전환이 교차하는 독창적인 시각예술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는 3층'감각의 손(The Sensory Hand)'과 4층 'Yellow Pulse 95', 두 개의 공간에 걸쳐 서로 다른 층위에서 ‘기호노동자’의 시간을 복원하고 성찰하는 여정을 펼친다.
KIWIKIM은 30여 년간 광고업계에서 활동한 시각예술가로, 현재는 회화, 설치, 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Fine Art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반복되는 노동과 기호 생산의 시스템 안에서 소진된 감각을 어떻게 다시 예술의 언어로 복원할 수 있는지를 주된 질문으로 삼으며, ‘감각의 복원’과 ‘시간의 틈’을 탐색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기호노동자의 잠의 실종 1: 감각의 손'
3층 전시에서는 작가가 스스로를 ‘기호노동자(semiotic laborer)’로 명명하며, 지난 30여 년간 광고산업 속 반복 노동이 손의 감각을 어떻게 기능으로 환원시켜왔는지를 조명한다. 전시의 중심 작품인 대형 설치물 〈감각의 손〉(220 x 100 x 55cm)은 철사를 뼈대로 한 구조물 위에 철수세미를 수백 개 안착시켜 제작된 조형물로, 반복적 소비 노동의 물질성과 감각의 마모를 형상화한다.
철수세미는 단단하고 거친 외형과 동시에 유연하고 해체 가능한 성질을 지닌 매체로,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소진된 감각과 반복된 노동의 내면을 은유한다. 작가는 이 손 조형물에 2분 45초, 145컷의 반복되는 디지털 드로잉 영상을 병치시켜, 손이 다시 감각을 회복해나가는 시간의 서사를 구축했다. 이는 ‘헤테로크로니아(heterochronia)’, 즉 감각이 쉼을 찾아나가는 ‘이질적 시간의 틈’으로, 노동의 연속성에서 벗어나 감각의 주체를 회복하려는 예술적 저항이다.
이번 작업은 총 200여 컷의 드로잉과 145컷의 아카이브를 통해, 감각의 재건 과정에서 나타나는 흔들림, 반복, 혼란, 어긋남의 기록을 남긴다. 작가는 말한다. “철수세미는 반란이다. 감각의 회복이다. 상상의 나래이다. 그리고 나의 손이 다시 나의 것이 되는, ‘시간의 틈’이다.”
'기호노동자의 잠의 실종 2: Yellow Pulse 95'
4층 전시는 보다 직접적으로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온 작가의 실제 작업물을 아카이브 형태로 전시한다. 수십 년간 광고 현장에서 제작된 이미지들과 시각적 기호들, 소비의 언어로 구성된 수많은 ‘기호’들은, 자본의 리듬과 감각의 소진이 교차하는 또 다른 시간의 풍경을 드러낸다.
‘Yellow Pulse 95’는 광고 작업 중 심박수 ‘95’를 유지하던 긴장 상태와, 시각 기호로 자주 사용되던 ‘노란색’을 결합하여 명명한 공간이다. 따뜻한 조명 아래 배치된 화려한 광고 이미지들은 그 속에 숨겨진 피로, 긴장, 감각의 침잠을 떠오르게 한다.
이 전시 공간은 소비의 언어로 압축된 감각의 흔적을 따라, 광고와 예술의 간극, 욕망과 시간의 충돌, 그 복잡한 관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기호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이 전시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감각’을 잃고 살아가는지를 일깨운다.
‘기호노동자의 손’은 다시 질문한다. 이 손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의 감각은 어디에 있는가? KIWIKIM은 그 '틈'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