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미적 태도론 Ⅳ

그러나 그 관상성은 중세 그대로의 이념이 아니라 근대적인 가치관과 융합하고 있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칸트에 있어서의 미적 관심성은 미학상의 ‘무관심성의 개념을 확립한 『판단력 비판』에 있다.〈미국의 미학자 딕키(George Dickie)는 미적 태도에 관한 이론을 칸트 이후 실레, 쇼펜하우어에서도 규정을 강조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취 미판단의 ‘질’ 면에서의 특질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취미란 모든 흥미로운 대상이나 어떤 표상의 방법을 만족시키거나 불만족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그러한 만족의 대상을 가리켜서 미라고 한다’. 

[박명인 미학산책] 미적 태도론 Ⅳ
[박명인 미학산책] 미적 태도론 Ⅳ

 

그 이후 미적태도나 미적현상이 본질적인 특질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미적 무관심성은 근대미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 칸트에 있어서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칸트는 ‘관심 (Interesse)’을 소유 그밖에 현실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대상의 실재성에 주목하면서 이해하고 있었다. 칸트가 관심과 결부시키고 있는 것은 감각적인 쾌적함과 선(도덕적인 선과 유용성)의 두 가지이다. 그는 구체적인 예로 어떤 궁전이 아름다운가 라고 문제 되었을 경우를 상정(想定)하고, 관심에 의한 판단을 네 가지 거론했다. 

어느 것이나 부정적인 판단의 관심이기 때문에 궁전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없다는 사례이다.(전체는 확실히 선가 쾌적의 두 가지 카테고리로 집약된다) 즉, 관심에 의한 판단의 예로서 한결같이 궁전의 아름다움이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불순한 취미판단’이 아니라 문장을 통한 의미에서의 미에 대한 무관심이다. 다시 말해, 칸트의 용어에 있어서의 ‘관심’이란 미에 대한 무관심이다. 단지 ‘관심’을 버리는 것이 미에 대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보증이 아니라 미적 무관심성의 개념이 본질적인 문제점이다. 칸트의 개념에 대한 가장 초기비판의 하나로 헤르더의 이론이 있다. 

그 골자는 Interesse라는 단어의 애매함을 지적하면서 이기적인 이해관여의 의미에서는 Interesse보다 Eigenutz라고 말해야 하며, Interesse는 오히려 사욕과는 무관계로서 ‘대략 나에게 관계를 가지는 것’의 의미로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미는 본질적으로 관심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용어의 문제는 국어상의 다툼에 지나지 않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칸트의 관심개념에 비춰 보면 두 사람의 대립은 보다 본질적인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칸트는 넓은 의미에서의 현실적인 가치관의 관여를 미에 관해서 부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헤르더는 ‘나에의 관계’를 필요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양자의 관심 개념은 정말로 별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오히려 미나 예술에 관한 파악에서의 뿌리 깊은 대립이 보인다. 칸트의 사상을 존중한 뒤에 무관심성의 개념을 수정하는 시도로서는 현상학자 M 가이거(Geiger)의 설을 들 수 있다. 향수(Genuá)라는 면에서 미적체험을 고찰하고 싶은 그는 다른 향수와 다른 미적 향수의 특징을 ‘관조 (Betrachtung)’라는 계기로 추구했다. 

다시 말해, 향수는 대상의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미점(美點)을 결감정(決感情)으로 ‘맛 본다’는 것이지만, 관조란 의식을 대상에 집중하고 그 실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가이가는 ‘내방집중(內方集中)’을 물리치고 ‘외방집중(外方集中)’을 옳은 미적태도로 주장했다. 이 입장으로부터 미적 무관심성의 개념에 논급한 그는 미적태도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심을 가지고 있는 interessiert’적인, 혹은 ‘사욕에 의한 것이 아닌 uninteressiet’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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