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자연과의 재결합, 예술로 노래하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자연을 향한 회귀의 염원과 생태적 상상력이 예술의 언어로 피어난다. 런던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Kristin Hjellegjerde Gallery)에서는 2025년 7월 11일부터 8월 9일까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성찰하는 국제 그룹전 '토양의 성장(Growth of the Soil)'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인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를 예술적 시선으로 되짚는다. 작가들은 민속, 신화, 지도, 식물, 동물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자연과의 접속을 모색하며, 인간이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아온 태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레나 콜필드 아일랜드 깊은 물 (얕은 생각) , 2025. 50 x 70cm 그림, 캔버스에 유화-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세레나 콜필드 아일랜드 깊은 물 (얕은 생각) , 2025. 50 x 70cm 그림, 캔버스에 유화-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분미 아구스 토(Bunmi Agusto-To)의 작품은 자아의 내면을 상상적 생태계로 확장한다. ‘혼성 식물 심기(Hybrid Planting)’는 오(Ó)라는 신의 손을 통해 창조와 순환, 내면의 성장이라는 심리적 생태를 시각화하며, 자연과 정신의 경계를 허문다. 이와 유사하게 마리 아니타 고브(Mari Anita Gough)는 헤테로토피아적 풍경을 통해 꿈과 현실, 신체와 풍경의 경계를 흐리며 대지와의 감각적 교감을 탐색한다.

슬리멘 엘카멜(Slimen El Kamel)의 만화경 회화는 기억과 자연의 파편들이 겹겹이 얽힌 세계를 드러내며, 감각을 통해 생태적 절박함과 회복의 가능성을 동시에 전한다. 한편, 아탈란타 잔테(Atalanta Xanthe)의 회화 속 돼지를 탄 여성의 형상은 본능과 직관으로 자연과 소통하던 고대적 관계의 복원을 상징하며, 인간의 불안하고도 연약한 항복의 순간을 시사한다.

슬리멘 엘카멜 튀니지 출신, 1983년생 2025년 개방 토지. 200 x 150cm-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슬리멘 엘카멜 튀니지 출신, 1983년생 2025년 개방 토지. 200 x 150cm-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반면 로테 카이저(Lotte Keijser)는 '녹색 백조 무늬 벽지'와 같은 오브제를 통해 우리가 자연을 이상화된 도상으로 소비해온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백조는 실제로 일부일처도, 이성애적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자연 역시 고정된 구분과 서사에 저항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로테 카이저 네덜란드, 1983년생 이상화된 모범 , 2025. 160 x 120cm 캔버스에 아크릴, 크레용, 모래-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로테 카이저 네덜란드, 1983년생 이상화된 모범 , 2025. 160 x 120cm 캔버스에 아크릴, 크레용, 모래-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이 전시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펼친다. 그르구르 아크랍(Ghrghr Akrab)의 왁스와 안료로 이루어진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 세레나 콜필드(Serena Colefield)의 동화적 매시업 알레고리, 마치에이 코시치(Maciej Kosciuch)의 황금알 새 형상들은 모두 감정, 신화, 기억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마리-아니타 고브 프랑스, 1986년생 Masque arboriforme dans la plaine des ancêtres , 2025. 67.5 x 47.5cm 콜라주, 수채화, 잉크, 파스텔, 종이에 흑연-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마리-아니타 고브 프랑스, 1986년생 Masque arboriforme dans la plaine des ancêtres , 2025. 67.5 x 47.5cm 콜라주, 수채화, 잉크, 파스텔, 종이에 흑연-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특히 사미족 예술가 한스 라그나르 마티센(Hans Ragnar Mathisen)의 손그림 지도는 현실과 신화, 자연 자원과 상징 세계가 만나는 사미족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는 현대인의 자연관에 새로운 시선을 던지며, 예술이 곧 대안적 인식의 지도로 기능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넬레케 클루스터맨-영국, 1996년생-연인들의 타자성 , 2025. 60 x 50cm 린넨에 오일-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넬레케 클루스터맨-영국, 1996년생-연인들의 타자성 , 2025. 60 x 50cm 린넨에 오일-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이와 함께, 에마 크리칠리(Emma Critchley)의 영상 삼부작 '사이렌(Siren)'은 무용수와 심해 생물의 교감을 통해 전혀 다른 존재로부터 배우는 생존의 윤리를 사유하게 한다. 레스터 로드리게스(Lester Rodriguez)의 조각 설치는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기후 위기 시대 예술의 정치적 발언을 형상화한 사례로 주목된다.

산티아고 지랄다 셀렌라, 2025 200 x 155cm 리넨에 유화 및 메탈릭 실크스크린 페인트-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산티아고 지랄다 셀렌라, 2025 200 x 155cm 리넨에 유화 및 메탈릭 실크스크린 페인트-사진 런던 크리스틴 헬레그예르데 갤러리 제공

'토양의 성장'은 단지 생태주의적 전시가 아니다. 이는 예술이 상상력과 돌봄을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 중심주의의 논리를 벗어나, 자연과의 감각적·정신적 연대를 회복하려는 이 시도는 오늘의 미술이 다시 '삶의 예술'로 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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