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미술관 ‘정예작가전’에서 선보이는 감각과 사유의 화면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한국화의 전통적 맥을 잇되, 현대 회화의 확장된 언어로 풀어내는 작가 이성영. 그는 단순히 기법을 계승하는 화가가 아니라, 시대적 감각과 조형적 실험을 통해 ‘지금 여기’의 회화를 정립하는 예술가다. 대전 세미갤러리에서 7월 3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정명희미술관 기획 정예작가전을 통해 이성영의 신작들이 다시 한 번 관객을 마주한다.

여명(黎明, dawn), 97x162cm, Canvas+Mixed media, 2022.-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97x162cm, Canvas+Mixed media, 2022.-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천지인(天地人), 73x117cm, Canvas+Mixed media, 2024.-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천지인(天地人), 73x117cm, Canvas+Mixed media, 2024.-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이성영 작가의 작업은 늘 경계를 거부해왔다. 수묵화로 시작한 그는 구상과 추상, 오브제를 넘나들며, 동양과 서양의 표현 방식을 융합한 새로운 회화적 지평을 개척해 왔다. “이 시대에 맞는 회화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동양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그에 머물지 않고 현재적 감수성으로 시대의 메시지를 직조해낸다.

그의 화면에는 여백의 미와 정제된 색채, 반복적인 오브제 구성, 그리고 해체와 재조합이라는 동시대 회화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수묵화의 서정성과 조형적 깊이를 지닌 그의 작품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시대를 향한 사유의 장(場)이자 실험의 무대다.

 여명(黎明, Dawn)-설악산 공룡능선, 65.3×115cm, Canvas+Mixed media, 2024.-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설악산 공룡능선, 65.3×115cm, Canvas+Mixed media, 2024.-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No War, 130.3x162.4cm, Canvas+Mixed media, 2025.-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No War, 130.3x162.4cm, Canvas+Mixed media, 2025.-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칼날과 폐기된 오브제로 직조한 회복의 예술-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칼날의 파편과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실험적 질감 표현이다. 이성영은 화면 위에 수천 번의 ‘붙임’과 ‘칠함’, 그리고 ‘긁어냄’의 과정을 거친다. 이 반복된 노동은 마치 수도승의 수행과도 같고, 한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처럼 느껴진다.

그는 또한 버려진 물건, 소반, 알약 캡슐, 철판, 일상에서 유래한 오브제들을 화면 속에 삽입하며, 그 의미를 전복시킨다. 이는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질문이자,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회복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시도다. 폐기된 것들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생명을 얻는 이 장면은, 관객에게 연민과 사유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여명(黎明, dawn), 112.2x162.5cm, Canvas+Mixed media, 2022.-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112.2x162.5cm, Canvas+Mixed media, 2022.-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65.5x100.4cm, Canvas+Mixed media, 2024-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65.5x100.4cm, Canvas+Mixed media, 2024-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그의 회화는 단순히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중첩된 재료와 칼날의 흔적, 요철의 촉감은 관람자에게 감각적 접근을 유도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의 입체성과 질감이 손끝에 와닿을 듯한 생생함으로 전해지고, 우리는 어느덧 단순한 관객이 아닌 ‘참여자’가 된다.

그의 화면 앞에 선 관객은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어떤 세계를 꿈꾸는가?”
그 질문은 단지 작가가 던지는 화두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마주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 된다. 이성영의 회화는 그렇게 감상에서 성찰로 나아간다.

정반합(正反合), 114×74.4cm, Canvas+Mixed media, 2025.-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정반합(正反合), 114×74.4cm, Canvas+Mixed media, 2025.-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60.8×91cm, Canvas+Mixed media, 2022.-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60.8×91cm, Canvas+Mixed media, 2022.-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이성영 작가는 홍익대학교 동양화 학사·석사 과정을 거쳐 단국대학교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국내외에서 50여 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국제 단체전,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소개된 그의 작업은 단지 '동양화의 현대화'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미술의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의 예술 세계는 단순히 새로운 기법의 시도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수행이며, 인간성과 예술의 근원을 되묻는 일종의 ‘철학적 작업’이다.

여명(黎明, dawn), 50.5x73cm, Canvas+Mixed media, 2021-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여명(黎明, dawn), 50.5x73cm, Canvas+Mixed media, 2021-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이성영 작가-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이성영 작가-사진제공 이성영 작가

한편, 이 전시는 정명희미술관이 2017년부터 기획해 온 ‘정예작가전’의 일환으로, 차세대를 이끌어갈 실험적 작가들을 발굴하고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이성영 작가의 참여는 이 기획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과 실험,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회화의 자리에서 그는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예술은 무엇을 바꾸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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