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스톤 갤러리 대만, 작가 권순익의 응답하는 예술 세계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한국 작가 권순익의 두 번째 화이트스톤 갤러리 초대전 '呼:應 호:응'이 대만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전시는 26점의 회화 신작을 통해, 부름과 응답, 그리고 시간과 자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2023년 화이트스톤 대만에서의 성공적인 개인전에 이은 두 번째 초대전으로, 권순익 작가와 화이트스톤 갤러리 간의 예술적 인연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특히 ‘호응(呼應)’이라는 전시 제목은 외부의 부름에 대한 내면의 응답을 뜻하는 동시에, 예술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과 그에 대한 응답의 과정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를 주최한 화이트스톤 갤러리(대표 시라이시 코에이)는 1967년 도쿄에 설립되어 일본 현대미술을 세계에 소개해온 대표적인 갤러리다. 2012년 개관한 가루이자와의 ‘뉴 아트 뮤지엄(New Art Museum)’을 시작으로 홍콩, 도쿄, 타이페이, 싱가포르, 베이징, 서울 등 아시아 전역에 걸쳐 7개 지점을 운영하며 예술의 국제화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 건축가 쿠마 겐고의 디자인이 반영된 전시 공간은 미학적 깊이와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권순익의 대표 연작 '적·연_틈'은 작가 고유의 시간성과 수행적 태도를 농밀하게 담아낸다. ‘적(積)’은 층층이 쌓아 올린 물감의 시간이며, ‘연(硏)’은 흑연을 문지르며 다듬는 수행적 과정이다. 이 두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틈’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라는 지점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이 틈의 공간을 통해 단순한 형식적 완결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감각의 밀도를 회화적으로 조직한다. 그의 화면은 ‘선’과 ‘면’이 결합되어 조형성과 깊이의 이중 구조를 형성하며, 마치 평면 위에 부조처럼 솟아오른 물질감을 통해 정적인 시공간 속 생명력을 획득한다.
권순익의 회화는 단지 시각적 결과물이 아니라, 긴 시간의 내적 수행과 물질과의 교감 끝에 도달한 응답이다. 검고 거친 흑연의 표면은 반복적인 문지름을 통해 서서히 은빛의 광택을 띠며, 고된 수행 끝에 도달하는 존재의 투명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 과정은 ‘묵언 수행’과도 같고, 철저한 자기비움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 방식은 결과물보다 과정에 방점을 둔다.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물감과 흑연을 올리고, 긁어내고, 문지르며 물성과 감각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행위는 일종의 정신적 공양과 같다. 그 안에는 자신을 비워가며 생성된 ‘오늘’의 사유가 고요히 녹아 있다.
1959년 서울 출생의 권순익 작가는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남미 등지에서 80회 이상의 전시를 열어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베네수엘라 국립현대미술관(MAC), 콜롬비아의 Museo de Arte del Tolima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뉴욕, 상하이, 홍콩 등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2025년에는 뉴욕의 대표 아트페어인 아모리 쇼(The Armory Show)에 참가할 예정이며, 같은 해 11월 25일부터는 대만 가오슝의 에일리언 아트센터에서 펠릭스 궉(Felix Kwok, 전 소더비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대만 현대미술의 거장 호 칸(Ho Kan)과의 2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호:응'은 권순익 작가가 예술을 통해 스스로와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행위이자, 내면의 울림에 충실히 응답하고자 한 기록이다. 반복된 수행 속에서 얻은 물성의 진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화면 위로 반짝이는 흑연의 감각은 보는 이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한 작가가 고요한 수련 속에서 만들어낸 ‘응답의 언어’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응답은 곧,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부름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