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원형을 창조한 현대추상조각의 아버지
“형태는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이 외면으로 스며 나온 것이다.”
– 콘스탄틴 브랑쿠시, 1937년 파리 인터뷰 중
출처: Constantin Brâncuși, “Interviews and Letters” (Editura Univers, 1995)
루마니아에서의 유년기
1876년 2월 19일, 루마니아 오르티니차(Hotenița).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목동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깊은 신앙심을 지닌 정교회 신자였습니다. 다섯 남매 중 셋째였던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대장간과 목공소를 오가야 했습니다.
그의 조형적 감수성은 이른 시기에 드러났습니다. 열 살 무렵, 마을 연못 옆에서 주운 막대기와 나무조각들을 깎으며 새와 물고기,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조각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을 성당의 수사들은 종종 “이 아이는 나무토막 하나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파리로
브랑쿠시는 루마니아 크라요바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1904년 파리를 향해 떠납니다. 기차도 버스도 없이, 그는 유럽 대륙을 도보로 두 달간 가로질렀고, 이 여정이 훗날 그의 삶과 예술의 집요함을 상징하는 일화가 됩니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식당 접시닦이, 가구공장 목수로 일하며 학비를 마련했고, 이후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해 정식 조각 교육을 받습니다. 이 무렵 그는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과 처음 마주하게 됩니다.
로댕의 권유로 그의 아틀리에에서 조수로 일하게 된 브랑쿠시는 불과 몇 달 만에 스스로 로댕 밑에서 떠납니다. 그가 남긴 짧은 말은 유명합니다.
“큰 나무 그늘 아래서는 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브랑쿠시의 이 말은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가가 되겠다는 이데아를 반영하였고 또한 훗날 실천되어 보여주기까지 한 말이었습니다。
순수한 형태로 점점 더 현대 추상조각의 시작점
브랑쿠시는 전통 조각의 묘사성과 드라마틱한 표현을 벗어나, 형태의 본질과 순수성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1910년 발표한 [잠자는 뮤즈(Sleeping Muse)]는 이러한 전환의 시작이었습니다. 현실적 묘사가 아닌, 타원형의 표면 안에 고요히 감긴 눈과 단정한 윤곽을 담은 이 작품은 당대 예술계에 큰 충격을 줍니다。
이후 [하늘을 향한 새(Bird in Space)], [끝없는 기둥(Endless Column)]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조각들은 형태의 정수와 공간의 흐름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평가됩니다. 특히 [하늘을 향한 새]는 1926년, 미국 세관에서 ‘예술이 아닌 산업용 금속 덩어리’로 분류되며 논란이 되었고, 브랑쿠시는 이를 끝까지 법정에서 다투었습니다. 이 재판은 미국 법정 사상 ‘예술의 정의’를 최초로 다룬 사례로 남게 됩니다.
브랑쿠시의 삶에는 사랑과 가정이라는 흔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는 생전에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외로움을 걱정했지만, 브랑쿠시는 늘 “나는 사람보다 형태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이 아니라, 금속과 나무, 대리석 속에서 진실의 형태를 발견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이나마 감정을 나눈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헝가리 출신 여류 예술가 마르그리트 페르도브(Margit Pogány)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잠자는 뮤즈》와 같은 걸작의 영감을 남겼고, 브랑쿠시는 그녀의 얼굴에서 ‘내면의 침묵’을 끌어내듯 조각했습니다. 그 외에도 마르셀 뒤샹의 여동생 수잔과 교류하며 정신적 교감을 나눴다는 이야기가 예술가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또한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격과 가난 속에서 자란 그는 열일곱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홀로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형제들과의 연락은 거의 단절되었고, 브랑쿠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파리에서 그는 오히려 고양이와 도구, 작업실과 더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손끝에 붙은 흙먼지와 쇳조각들은 가정 대신 예술을 품은 그의 삶을 상징하는 언어였습니다.
“나는 가족을 만들지 않았지만, 내 조각들은 모두 내 피와 살로 만든 자식들이다.”
—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회고 중에서
몽파르나스의 작은 작업실. 그곳에는 늘 고양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한 일상은 그에게 유일하게 반복되던 삶의 리듬이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조용히 그의 주변을 맴돌았고, 때로는 그의 무릎 위에 잠들기도 했습니다. 브랑쿠시는 말을 아꼈고, 고양이들은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위로를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의 몇몇 작은 조각에서는 고양이의 유연한 몸짓, 구불구불한 실루엣이 은유적으로 드러납니다.
전성기와 유산 – ‘형태의 궁극’을 남기다
1920~30년대는 브랑쿠시의 전성기였습니다. 파리, 뉴욕, 런던을 오가며 작품을 발표했고, 당대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교류했습니다. 피카소, 뒤샹,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이 그의 작업실을 찾아왔고, 그는 서양 조각의 전통적 문법을 완전히 갱신한 작가로 주목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성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끝없는 실험, 묵언의 노동, 고요한 형태. 그는 말보다 손으로 말하는 조각가였습니다.
“나는 나무를 깎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새를 꺼내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돌과 금속 안에서 가장 본질적인 생명을 꺼내는 조각가로 남았습니다.
작품의 보존
1957년 3월 16일,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파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깎고 닦은 형태들을 뒤로한 채, 마지막까지도 조각가로서의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생전에 그는 “내 작업실을 내 마지막 조각으로 남기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그의 유언장에는 모든 유품과 작품, 도구를 프랑스 정부에 무상 유증하되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해줄 것’이라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그 유산은 곧 예술계와 정부, 그리고 수집가들 사이의 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프랑스 행정의 지연과 국제 미술 시장의 과열로 인해, 브랑쿠시의 작업실은 경매 해체 또는 밀반출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의 조각 일부는 이미 사라졌고, 아틀리에는 정리 대상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브랑쿠시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아고스트 팍(Ago Brancusi)입니다. 그는 유족 대리인으로서 즉시 움직였고, 작업실의 보존을 위해 프랑스 문화부를 직접 설득했습니다. 시민 서명운동을 벌였고, 퐁피두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수십 차례 현장 조사를 진행하며 137점의 조각과 87점의 데생, 1,600여 점의 도구 및 가구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수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출된 작품들은 브랑쿠시의 대표작 중 일부였습니다. 선반 위에 올려져 있던 잠자는 뮤즈(Sleeping Muse)는 청동의 부드러운 타원 위에 눈을 감은 얼굴이 새겨진 작품으로, 형태의 순수성과 내면의 침묵을 동시에 담아낸 그의 상징이었습니다. 아고스트는 이 작품을 직접 꺼내 포장했고, 미술사학자들은 이를 “브랑쿠시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조각”이라 불렀습니다.
또한, 하늘을 향한 새(Bird in Space)로 이어지는 '새' 조각 시리즈와, 루마니아 트르구지우에 설치된 [끝없는 기둥]의 소형 모델들도 작업실 한켠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종이, 나무, 금속으로 실험된 이 프로토타입들은 브랑쿠시가 단순한 형상을 어떻게 공간 속에 풀어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조형 실험의 흔적이었습니다.
당시 일부 작품은 수집가들에 의해 밀반출될 뻔했지만, 프랑스 예술청과 퐁피두센터 관계자들의 감시 아래 무사히 회수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퐁피두센터 보존 책임자 도미니크 보아스노(Dominique Boasneau)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가 숨 쉬던 공기를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 파리 퐁피두센터 바로 앞에는 ‘브랑쿠시 아틀리에(Atelier Brâncuși)’가 완전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됩니다. 책상 위의 반쯤 깎인 돌, 손자국이 남은 목제 도구, 손바닥만 한 데생 메모까지 모두 그대로.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브랑쿠시가 남긴 마지막 조각 작품, 곧 그의 존재를 형태로 옮긴 공간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돌이 아니라 공간이었습니다.
영원한 질문
브랑쿠시는 생애 동안 조각뿐 아니라 사진, 설치, 가구 디자인까지 예술적 실험을 이어갔으며, 모더니즘 조각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형태의 완성보다 본질의 울림을 조각하려 했고, 인물보다 감정의 파장을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가 남긴 말 중 하나는 지금도 예술가들에게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조각을 만들지 않았다. 다만 불필요한 것을 깎아냈을 뿐이다.”
그의 삶은 말보다 선(線)이었고, 설명보다 곡면이었으며, 해명보다 비움이었습니다. “큰 나무 아래선 내 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말하고, 로댕을 떠난 그의 선언은 단지 독립이 아니라, 모든 예속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철학이었습니다. 그 철학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형상을 살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해석과 서술, 정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새 존재를 부풀리고, 때로는 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랑쿠시가 보여준 ‘형태의 정수’는 말이 필요 없는 고요 속에서 진실을 건져 올리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고요를 잃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브랑쿠시의 조각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무엇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고, 무엇인지를 기억하라.
그의 작품은 단순함을 빌려 삶의 본질을 되물었고, 그의 고독은 예술로 승화되어 하나의 시대를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브랑쿠시에게 빚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덜어냈는가”에 대한 예술가의 양심이자 인간의 성찰입니다.
강민수 작가 – 총 평
저는 브랑쿠시를 한 줄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고독… 그것을 친구로 삼고 조각에 새겨 영원히 남기려 한 시적 인간상.”
그렇습니다. 브랑쿠시의 조각에서는 고독이 느껴집니다. 허무가 느껴집니다. 고요가 느껴집니다.
그의 삶의 모습이 예술품에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베르니니가 판타지 소설을 써서 인물과 감정의 세세함까지 모두 다루었고, 미켈란젤로가 장대한 드라마를 연출하듯 블록버스터 연출처럼 클라이맥스를 조각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브랑쿠시를 통해 짧은 뮤직비디오를 보듯 간결하고 아름답고 함축적인 예술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침묵 속에, 그의 고요 속에, 정신이 만들어낸 궁극의 예술로서의 그의 조각이 세기의 조각이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을 걷어내고, 상대를 이해시키려는 미사여구를 빼버리고, 딱 핵심만 — 아니, 그 핵심도 더 덜어내서 툭 던지는 한마디의 강하고 짧은 이야기.
그것이 브랑쿠시 조각이 시대를 꿰뚫는 마법 같은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가지려 하고, 더 보이려 하고, 더 말하려 하지만 브랑쿠시는 모든 것을 덜어내고 깎아내며 더 많이 지워갔습니다. 그 부재의 조각이 우리를 반성하게 합니다. 너무 많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져버려 나도 무겁고 관객도 무거워져 가는 서로의 짐이 되어버리는 예술… 스트레스가 되어버리는 작품이야기… 우리가 경계하고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그의 삶도 그처럼 조용하고 간결했습니다.
그의 예술도 그렇게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물처럼,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불편하지 않습니다.
저도 한 사람의 감상자로서, 오늘날에도 그런 작가를 기대해 봅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1876년 2월 19일에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1957년 3월 16일에 프랑스에서 사망했으며, 만 81세까지 살았습니다.”
다음화(6화) 예고
실존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그는 존재의 밀도와 인간 내면의 불안을 ‘선(線)’으로 깎아낸 예술가였습니다. 로댕의 영향 이후, 조각이 어디까지 개인의 실존을 담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에필로그
“브랑쿠시는 모더니즘 조각의 심장이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닌 ‘무엇을 느꼈는가’를 묻게 만든다.”
에리카 슈타인(Erika Stein), 현대조각사학자
출처: 『Brancusi: The Form Eternal』, MIT Press, 2011
강민수의 '파르락시스'는 조각가와 예술을 통해 형상의 진동을 읽어내는 저널입니다. 이 코너는 조각가의 생애와 시대, 그리고 그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망하며, 대중과 전문가의 눈으로 조각 예술의 본질과 의미를 탐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