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기획 인터뷰] EKJO 조은경 디자이너, 'K-패션, 준비된 자에게 세계는 열린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패션의 심장, 프랑스 파리. 그 한복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EKJO로 20여 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한국인 디자이너가 있다. 조은경,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무자본으로 파리 컬렉션에 도전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처음처럼’ 디자인을 말하고 있다.
그를 서울에서 만난 것은 오랜만의 귀국과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행사 참가차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급히 이뤄졌지만, 그의 말에는 천천히 쌓아올린 신념과 철학이 무게감 있게 담겨 있었다.
인간을 위한 옷, 행복을 입히는 디자인-EKJO 브랜드의 중심에는 “인간적인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조은경 디자이너는 옷을 단지 겉모습을 꾸미는 도구로 보지 않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제 옷을 입고 따뜻함과 편안함, 자기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 본질은 ‘사람에게 닿는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순한 아름다움보다 입는 이의 감정과 존재를 이해하는 옷, 그리고 자연스럽고 우아한 동양적 감성을 유럽의 고전적 미감에 조화시키는 ‘EKJO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무자본, 무인맥… 파리에서 시작한 ‘디자이너의 반란’-2000년, 조은경 디자이너는 아무런 자본도 없이 샘플 수십 벌만 들고 파리 컬렉션에 참가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성공, 일본의 다이마루 백화점 등 유수의 바이어들로부터 쏟아진 주문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 시기 그는 메트로를 탈 돈조차 없었고, 점심을 준비하지 못할 때 동료들이 도시락을 함께 나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 쏟아졌지만, 결제는 후불이었고, 생산비 조차 없었어요. 그때 나눠준 점심 한 끼가,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그의 이러한 도전은 이후 프랑스 패션지 커버 장식, 파리 공식 캘린더 ‘Calendar ON’ 등재, 프레스와 바이어들의 주목 등으로 이어지며 EKJO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겐조나 안나수이처럼, 한국 디자이너도 세계 중심에 설 수 있다”-조은경 디자이너는 늘 말했다. “겐조나 안나수이 같은 디자이너가 우리나라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고도 했다.
“K-패션은 엄청난 가능성을 가졌어요. 하지만 세계로 나아가려면 그 나라의 문화와 문법을 이해해야 해요. 한국에서 아무리 멋져도, 파리에서 통하려면 그들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유럽 시장의 보수성과 문화적 자부심, 언어적 장벽 등을 넘기 위해선 단단한 준비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디지털 마케팅과 글로벌 소통이 쉬워진 오늘날,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더 넓고 열려 있다고 진단했다.
지속 가능성, EKJO의 원점이자 미래-EKJO는 일찍부터 친환경 소재와 지속 가능한 생산을 실천해 왔다. 지금에서야 ‘지속 가능성’이 화두가 되었지만, 그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천연섬유 사용과 과잉 생산 지양, 지역공정 중심의 작업을 실천해 왔다.
“유럽은 한때 환경에 무관심했지만, 지금은 변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적 딜레마 속에 있죠. EKJO는 인간과 환경 모두에 도움이 되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또 신기능성 합성섬유가 필요할 때는 인간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하되, 일상복과 기본 의류에 있어서는 친환경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패션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조은경 디자이너에게 옷은 ‘과시의 도구’가 아닌,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다. 그는 좋은 옷이란 단지 비싸고 세련된 것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삶과 감정, 신념을 드러내는 도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옷을 입어야 해요. 소비자도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안목과 철학을 가질 수 있다면, 패션은 더욱 건강해질 겁니다.”
“꿈꾸는 자가 아닌,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그는 마지막으로 젊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현실적 조언을 남겼다. 언어, 기술, 기획력 등 모든 능력을 갖추기 위한 자기투자 없이는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꿈을 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준비 없는 꿈은 망상입니다. 자신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습니다.”
EKJO, 다음을 향한 발걸음-현재 EKJO는 파리의 중심지 생제르맹, 마레 지구 등에서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친환경 지속 라인 ‘Conscious Lab’과 젠더 프리 라인 ‘NO GENDER’를 통해 더 넓은 소비자와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조은경 디자이너의 다음 목표는 “세계적인 브랜드 EKJO를 한국과 프랑스,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함께 성장시키는 것”이다.
“저는 천재가 아니라, 노력하는 디자이너예요. 앞으로도 이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옷,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되길 바랍니다.”
EKJO는 단지 옷이 아닌, 삶의 언어다. 조은경이라는 이름은 이제 K-패션의 외연을 넓히는 증표이자,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서 있는 한국 여성 디자이너의 상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