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스페이스 엑스 개인전, 2025년 7월 1일~20일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2025년 7월 1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아트스페이스 엑스에서 열리는 김명남 교수의 개인전 '하얀 묘법(妙法)'은 백색의 화면 위에 오롯이 쌓아 올린 생의 궤적을 보여주는 전시다. 바늘과 송곳, 삼베실로 직조된 그녀의 작품은 눈에 보이는 회화가 아닌, ‘촉각의 글쓰기’로 생의 비문을 새긴다.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프랑스 베르사유 미술대학 판화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김명남 교수는 1993년 도불 이후 30여 년간 파리를 기반으로 창작과 교육을 병행해 왔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 여정을 총망라한 귀국 전시로, 2015년부터 2025년까지의 주요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하얀 화면 위에 생을 수놓다” 전시 제목인 ‘하얀 묘법’은 그 자체로 작가의 철학을 함축한다. 작가는 말한다.
“저에겐 작업이 곧 일기였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삶, 한국을 떠나 있던 시간, 그리고 유년기의 기억까지 매일같이 직조하듯 실과 바늘로 기록해왔습니다.”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삼베실로 베틀 앞에 앉아 짜던 장면은, 지금의 작업에 있어 정신적 원형이 되었다. 작가는 송곳으로 종이를 찢고, 바늘로 꿰매며 일상과 기억을 오롯이 침잠시킨다. 그것은 ‘흰 종이 위의 글쓰기’이자, ‘삶을 통과한 흔적’이다.

“색이 아닌 감각으로 세계와 마주하다” 김 교수의 ‘하얀 묘법’은 시각을 넘어선 감각의 예술이다. 평론가 엄상섭은 그녀의 작업이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시작된 새로운 감각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붓을 놓고, 촉각을 들었다. 색은 내려놓고, 실로 사유했다.

검정묘법 25-12 한지위에 글쓰기 21×30cm 2025-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검정묘법 25-12 한지위에 글쓰기 21×30cm 2025-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미완의 글, 한지위에 삼베실로 글쓰기, 2 × 3 m, 31 작품 설치 2019-2025-III-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미완의 글, 한지위에 삼베실로 글쓰기, 2 × 3 m, 31 작품 설치 2019-2025-III-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외국 생활 속에서 언젠가 문득, 송곳으로 찌르고 실로 꿰매는 이 행위가 말보다 더 진하게 전해졌습니다. 바람이 없는 날, 고요 속에서 물성의 힘이 터져 나왔죠.”
김 교수는 물감 대신 먹과 실, 화면 대신 촉각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점자처럼 손끝으로 읽히는 침묵의 문장이 되었다.

감상은 ‘읽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 그녀는 관람자에게도 감상의 방식을 제안한다.
“작가가 무엇을 하려 했는가보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가를 먼저 보셨으면 합니다. 실로 쓴 글, 송곳으로 새긴 자국… 거기서 각자의 기억을 발견하셨으면 해요.”

하얀묘법25-3 아르쉬 종이위에 송곳으로 글쓰기 30×45cm 2025-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하얀묘법25-3 아르쉬 종이위에 송곳으로 글쓰기 30×45cm 2025-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하얀묘법III 켄파스 위에 아르쉬 종이 송곳으로 작업 97×194cm-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하얀묘법III 켄파스 위에 아르쉬 종이 송곳으로 작업 97×194cm-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작품 속 점과 선, 실의 흔적은 오선지 같기도 하고, 비문 같기도 하다. 언어 이전의 시문(詩文), 혹은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의 층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스와 한국, 두 대륙 위의 예술 여정-김명남 교수는 2000년 프랑스 문화성으로부터 작업실을 제공받으며 국제적 활동을 본격화했다. 국립아시아기메박물관 발표, 한불현대목판화전 총감독, 국제비엔날레와 컨퍼런스 참가 등 그녀의 작품은 국경을 넘고 시대를 관통해왔다. 프랑스 유수의 살롱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26년에는 쉐마미술관의 국제미술상 수상자로서 기획전이 예정되어 있다.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의 ‘하얀 묘법’-침묵의 직조, 생의 비문을 새기다-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그녀는 이동엽, 이우환, 박서보 등 단색화 계열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면서도, “단색을 넘는 감각의 회화”로서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확장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검은 묘법’으로의 확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작가로서 남기고 싶은 것은 좋은 작업 하나”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담담하게 답한다.
“좋은 작업 하나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포스터-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포스터-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 교수-사진제공 김명남 작가

김명남의 작업은 그러한 침묵의 선언과 같다. 큰 제스처도, 과도한 수사도 없다. 그저 실 한 올, 송곳의 흔적, 그것이 말이 되고, 기억이 되며, 생의 결이 된다. 그녀의 ‘하얀 묘법’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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