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추억해낸 춤꾼 이애주
유홍준_이애주문화재단 이사장, 전 국가유산청장

 이 책은 희대稀代의 춤꾼 이애주 선생이 생전에 남겨 놓은 춤 사진을 모아 하나의 기록이자 작품집으로 펴낸 사진첩입니다. 이애주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생 말년에 함께 세운 ‘이애주문화재단’은 이후 선생의 유고를 모아 『이 땅에, 춤이란 무엇인가』, 『이애주의 춤 생각』, 『승무의 미학』등 여러 권의 책을 엮어 냈고, 전통춤 제자들로 하여금 선생의 춤 유산을 계승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계속해 왔습니다. 

승무를 추고 있는 이애주 명무_이애주문화재단 제공-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승무를 추고 있는 이애주 명무_이애주문화재단 제공-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작년 3주기에는 경기도 가평에 아담한 집 한 채를 구입하여 선생의 유품을 보관할 수 있는‘이애주 춤 문화관’을 마련했으며, 선생이 생전에 정성으로 추진했던 ‘한성준 기념사업’을 잇기 위해 홍성군 갈산면 한성준 선생 묘소에 추모 비석을 새로 세우고 ‘한성준 춤·소리 예술제’를 복원·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재단이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사업이 바로‘이애주 춤 사진첩’입니다. 확인된바, 선생은 살아 생전에 엄청난 양의 춤 작업을 펼치셨고, 또 엄청난 양의 글과 자료, 사진과 영상을 남기셨습니다. 그 사진과 영상 등을 정리하는 데 4년의 시간으로도 모자라 아직도 적지 않은 자료가 쌓여 있는 형편입니다만,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제작을 서둘러 마침내 그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이 『이애주 춤 사진첩‘천명’』입니다. 선생의 일생이 담겨 있는 갖가지 사진과 글, 그림을 통해 당대와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희대의 춤꾼 이애주를 잊지 않고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춤 일생을 ‘법무法舞의 시대’, ‘신명神命의 시대’, ‘터벌림의 시대’, ‘천명天命의 시대’ 이렇게 네 단계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201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 두 갑자 즉 120주년을 맞는 해에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평생의 춤 작업을 총정리하면서 피력한 자기 소회所懷입니다.

'바람맞이' 공연 중인 이애주 명무(1987년)_이애주문화재단 제공-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바람맞이' 공연 중인 이애주 명무(1987년)_이애주문화재단 제공-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법무의 시대’는 어린 시절 우리 전통춤의 기본을 습득한 후 대학생 때 명무名舞 한영숙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어 우리춤의 법도를 익힌 시기입니다.

‘신명의 시대’는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춤패‘신’을 창립하여 사회참여적 춤판을 일구다가 1987년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바람맞이>와 <썽풀이>로 시대의 질곡을 베 가르고 나선 시기입니다.

‘터벌림의 시대’는 밀레니엄이 통과하던 2000년 전후, 한반도의 동서남북 백두에서 한라까지 백령도에서 독도까지 국토와 자연을 순례하며 터를 벌려, 우리네 땅과 바다가 겪은 온갖 상처를 아파하며 온몸으로 치유한 시기입니다.

‘천명의 시대’는 자신이 춤추고 살아온 성장과 확장의 60년 세월을 성숙과 각성의 시간으로 바꾸어 낸 깨달음의 시기, 질적 전환의 시기입니다. 무용계의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영가무도>에 대한 발견과 재해석, <한밝춤>이라는 춤의 근원에 대한 발굴과 상상은 춤꾼 이애주가 못다 이룬 채 후대에 남기고 간 과제이자 유산입니다.

태평춤을 추고 있는 이애주 명무_이애주문화재단 제공-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태평춤을 추고 있는 이애주 명무_이애주문화재단 제공-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이 사진첩은 이애주 선생이 규정한 자신의 춤 일생을 따라 전개되고 있습니다만, 선생이 미처 언급하지 않은 시기가 있어 중간에 보충해 놓은 바, 바로‘근본을 돌아본 시기’입니다. 스승인 한영숙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후 몇 년간의 칩거 또는 집중 시기인데, 이 시기 이애주 선생은 전통에 침잠하여 그 근원을 찾아가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이애주 선생은 무형유산 <승무>의 예능보유자 승계를 넘어 전통춤에 내재한 우주적·인류적 생명 원리를 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터벌림의 시대’나 ‘천명의 시대’가 바로 그러한 집중과 몰입의 결과로서, 이는 과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을 실감케 하는 탁월한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애주 춤 사진첩‘천명’』 안에는 선생의 춤 사진 말고 또 다른 글과 그림들이 실려 있습니다. 윤영옥과 김연정 두 제자는 이 책을 엮어낸 편저자이기도 하거니와 두 제자의 헌사가 눈물겹습니다. 평론가 윤중강 님의 추모사는 거친 듯 숨김없는 찬사이며, 평론가 김영희 님의 섬세하고 치밀한 분석은 마치 평전의 요약에 가깝습니다. 문화인류학자 양종승 님의 촌평은 짧지만 굵고 진하며, 춤 평론계의 거두 채희완 님과 이애주 선생의 인터뷰 대담은 우리네 전통춤의 정통성과 사회성, 생성적 창조성에 관한 최고 수준의 담론입니다. 

특히 화가 홍성담이 벌여 놓은 장르를 뛰어넘는 장문의 글은 금불문 고불문今不聞 古不聞의 명문名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오윤 화백을 비롯한 손장섭, 최병수, 이호신, 이승곤, 전승일 등 많은 화백의 춤그림 역시 금불비 고불비今不比 古不比의 명작들이라 할 수 있는 바, 저 유홍준의 부채그림들도 한데 어울려 감상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애주 춤 사진첩 - 천명-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이애주 춤 사진첩 - 천명-사진제공 이애주문화재단

이 사진첩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애주문화재단 임진택 상임이사와, 헌신적으로 실무작업에 임해 준 재단 양정순 이사, 이연실 자료실장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자기 일처럼 협력해 주신 ‘개마서원’윤혜경 대표님과 ‘그래픽시선’장성하 대표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부디 이 사진첩이 희대의 춤꾼 이애주의 춤 세계를 세상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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