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박물관 전시 '예술로 떠나는 감각의 대장정'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어느덧 무더운 여름의 초입, 고온다습한 기후 속에서 지친 일상에 예술로 숨을 틔울 시간이 찾아왔다. 미국 전역의 미술관들은 여름 시즌을 맞아 예술사적 깊이를 갖춘 회고전부터 동시대 담론을 반영한 전위적 전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이며 관람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이번 특집에서는 동부의 뉴욕부터 서부 캘리포니아, 남부의 텍사스를 거쳐 중서부 캔자스시티까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박물관 전시 9선을 소개한다.

사야 울팔크,  ("공감" 시리즈 중), (2012). 설치 전경, ,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샌프란시스코, 2013년 6월 28일~9월 29일.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제공, 사진: 존 화이트.
사야 울팔크,  ("공감" 시리즈 중), (2012). 설치 전경, ,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샌프란시스코, 2013년 6월 28일~9월 29일.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 제공, 사진: 존 화이트.

 

1. 구스타브 카유보트: 그의 세계를 그리다
Art Institute of Chicago | 6.29 – 10.5

19세기 파리의 도회적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해낸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오르세 미술관과의 협업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익숙한 명작과 함께 드물게 공개되는 개인 컬렉션 소장품, 스케치, 사진 등 총 120여 점을 통해 사진적 시선과 회화적 묘사가 교차하는 카유보트의 미적 세계를 조망한다.

구자브 카유보트, 보트 타기 파티 (1877), 개인 소장. 사진: Leemage/Corbis, Getty Images 제공.
구자브 카유보트, 보트 타기 파티 (1877), 개인 소장. 사진: Leemage/Corbis, Getty Images 제공.

 

2. 리사 유스카바게: 드로잉
The Morgan Library & Museum | 6.27 – 2026.1.4

한때 ‘소녀적’이라는 폄하를 받았던 리사 유스카바게. 그녀의 예술은 오늘날 중견 여성 작가로서 강한 미학적 정체성과 시대적 전환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흑연·파스텔·목탄 등 드로잉 중심으로 유스카바게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최초의 박물관 기획이다.

리사 유스카바게(1962년생), 네온 선셋 , 2013. 파스텔톤으로 수작업으로 추가한 모노프린트에 알루미늄을 부착한 작품. 개인 소장품 © 리사 유스카바게. 작가와 데이비드 즈워너 제공.
리사 유스카바게(1962년생), 네온 선셋 , 2013. 파스텔톤으로 수작업으로 추가한 모노프린트에 알루미늄을 부착한 작품. 개인 소장품 © 리사 유스카바게. 작가와 데이비드 즈워너 제공.

 

3. Anicka Yi: Karma Debt
Museum of Fine Arts, Houston | 6.29 – 9.7

향,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 경계 없는 매체를 넘나드는 아니카 이는 이번 휴스턴 미술관 전시에서 ‘카르마적 빚’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생체 모방 애니메트로닉스와 사후에도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율 프로그래밍 등, 기술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담긴 실험적 전시다.

아니카 이, ' 산호의 가지마다 달빛이 비치다' , 2024, 영화 스틸컷, 휴스턴 미술관, 캐롤라인 와이스 로 기부 기금으로 박물관 매입. © 2025 아니카 이/아티스트 권리 협회(ARS), 뉴욕/작가와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아니카 이, ' 산호의 가지마다 달빛이 비치다' , 2024, 영화 스틸컷, 휴스턴 미술관, 캐롤라인 와이스 로 기부 기금으로 박물관 매입. © 2025 아니카 이/아티스트 권리 협회(ARS), 뉴욕/작가와 글래드스톤 갤러리 제공.

 

4. 퀴어 렌즈: 사진의 역사
The Getty Center, LA | 6.17 – 9.28

사진의 언어로 퀴어 공동체의 존재를 증언해온 150년의 시선. 게티센터는 퀴어 사진사의 흐름을 다양한 작가들의 렌즈를 통해 조망하며, 정체성, 저항, 공동체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아카이브한다. 상업화된 프라이드와는 대조되는 진정성의 기록들이 시대적 질문을 던진다.

1969년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게이 해방 행진 . 다이애나 데이비스. 뉴욕 공립도서관 필사본 및 기록보관소, 애스터, 레녹스, 틸든 재단 © NYPL. 이미지 제공: 게티 센터/발레리 테이트
1969년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게이 해방 행진 . 다이애나 데이비스. 뉴욕 공립도서관 필사본 및 기록보관소, 애스터, 레녹스, 틸든 재단 © NYPL. 이미지 제공: 게티 센터/발레리 테이트

 

5. 사야 울팔크: 공감하는 우주
미정 (전시 투어 일정 포함)

‘공감하는 여성 인류’라는 가상의 서사를 중심으로 사야 울팔크는 민족, 신화, 디지털 감수성이 융합된 다문화적 판타지를 제시한다. 조각과 영상, 회화 등 복합 설치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세계 구축(WORLD-BUILDING)적 접근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사야 울팔크: 공감의 우주"(2025) 전시 전경. 사진: 제나 배스컴, 뉴욕 예술 디자인 박물관 제공.
"사야 울팔크: 공감의 우주"(2025) 전시 전경. 사진: 제나 배스컴, 뉴욕 예술 디자인 박물관 제공.

 

6. Wrapped Walk Ways 50주년 기념전
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 6.28 – 2026.1.18

크리스토 & 잔 클로드의 대표적 대지예술 '랩드 워크 웨이즈'는 1978년 루스 파크의 오솔길을 황금빛 직물로 덮으며 일상의 공간을 초현실적 체험으로 변모시켰다. 이번 전시는 설치 당시 도면, 사진, 설계 자료 등을 통해 일회성의 예술이 지닌 준비과정과 미학적 깊이를 되살린다.

크리스토,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제이콥 L. 루스 기념 공원 프로젝트) , 1978. 넬슨-앳킨스 미술관 소장. 사진: 에바-인케리, © 크리스토 & 잔 클로드 재단
크리스토,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제이콥 L. 루스 기념 공원 프로젝트) , 1978. 넬슨-앳킨스 미술관 소장. 사진: 에바-인케리, © 크리스토 & 잔 클로드 재단

 

7. 트리샤 브라운 & 로버트 라우션버그: 빙하 유인물
Walker Art Center | 6.26 – 2026.5.24

무용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협업해온 브라운과 라우션버그의 1979년 공연 <빙하 유인물>의 전시화 작업. 오리지널 무대영상, 의상, 스틸컷 자료를 통해 안무의 흐름과 이미지의 교차를 기록하고, 라우션버그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학제적 예술의 의미를 되짚는다.

트리샤 브라운과 로버트 라우션버그: 빙하 유인물. 이미지 제공: 워커 아트 센터 홍보팀(워커).
트리샤 브라운과 로버트 라우션버그: 빙하 유인물. 이미지 제공: 워커 아트 센터 홍보팀(워커).

 

8. 찰스 아틀라스: 새로운 청교도를 찬양하라
The Bass Museum, Miami | ~10.19

영국의 전설적 안무가 마이클 클라크와 영상 작가 찰스 아틀라스의 협업작 <Hail the New Puritan>(1985)은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사이를 유영하며 1980년대 런던 퀴어 서브컬처의 풍경을 스냅처럼 담아낸다. 펑크, 발레, 밤문화가 교차하는 무대의 열기는 오늘날 다시금 ‘자유’와 ‘저항’의 예술적 아이콘으로 회자된다.

찰스 아틀라스, 새로운 청교도에게 경의를 표하며 (영화 스틸). ©Charles Atlas. 작가와 루링 오거스틴(뉴욕) 제공.
찰스 아틀라스, 새로운 청교도에게 경의를 표하며 (영화 스틸). ©Charles Atlas. 작가와 루링 오거스틴(뉴욕) 제공.

 

9. 베르메르의 연애 편지
The Frick Collection, New York | 6.18 – 8.31

프릭 컬렉션의 로널드 S. 로더 갤러리 개관을 기념하여 열리는 본 전시는, 네덜란드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대표작 세 점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유례없는 기회다. '여주인과 하녀', '연애 편지', '편지를 쓰는 여인'—이 세 편지의 서사가 엮어내는 베르메르적 내면의 드라마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러브레터 (약 1669-7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요하네스 베르메르, 러브레터 (약 1669-7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에필로그 | 예술이 묻는 여름의 의미
이번 여름, 미국의 박물관들은 단지 전시 공간 그 이상이다. 인간성의 복원, 기억의 정치, 정체성의 확장, 그리고 감각의 심화—이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잠시 멈추어 서고, 눈을 감고, 감응할 수 있다면, 이 전시들은 단순한 관람이 아닌 하나의 여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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