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달진 미술전문위원] 현대미술에서 ‘보따리’는 이제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그 철학을 세계 속에 온전히 펼쳐 보인 이가 바로 김수자 작가다.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회화과 및 대학원, 이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로 자리매김했다.
김수자 작가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그는 어머니가 바느질하던 이불에서 영감을 받아, 낡고 남은 천 조각들을 이어 만든 ‘보따리’ 작업을 시작했다.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보자기와 천은, 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상징적 조형언어로 승화되었다. 보따리는 단지 물건을 담는 용기를 넘어, 인간의 삶과 기억, 이주와 고난, 희망과 상실의 서사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보따리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입니다.”
김수자 작가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에게 있어 보따리는 ‘나’이기도 하고, ‘우리’이기도 하며, ‘세상’ 전체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보따리 트럭 영상작업은, 트럭 위에 보따리를 가득 싣고 도시를 누비는 장면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이동성과 불확실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김수자는 회화에서 시작하여 설치, 영상, 조각 등 매체의 경계를 허물며 작업의 지평을 넓혀왔다. '바늘여인', '실의 궤적', '호흡', '보따리 연작'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 세계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핵심 주제를 깊이 있게 탐색하며 관객에게 철학적 사유의 지점을 제시한다.
국내외 주요 전시에 빠짐없이 초청되는 그는, 1988년과 1991년 갤러리현대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1998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단독 초대 등 국제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특히 2024년 프랑스 파리 피노 컬렉션에서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 작가로 전관을 전시하며, 418개의 거울을 바닥에 설치해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보따리’로 전환시키는 시도를 선보였다. 이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감성적 체험의 장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작업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예술적 성취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 1991년 송은문화재단상, 1992년 석남미술상, 2000년 우경문화예술상, 2007년 뉴욕현대미술재단 시각예술상, 2015년 호암상 예술부문, 2017년 김세중조각상 및 아시아 소사이어티 아트 어워드, 2021년 옥관 문화훈장, 2024년 후쿠오카상 문화예술부문 등을 수상하며 그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김수자 작가는 단순히 ‘보따리 작가’가 아닌, 시대와 인간, 그리고 존재를 엮어내는 ‘서사의 봉합자’다. 수많은 색과 감정, 기억과 고통이 얽힌 천 조각을 바느질로 이어붙이듯, 그는 세상의 단편들을 하나로 엮어내며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렇게 오늘도, 그는 또 하나의 보따리를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을 담기 위한.
자료-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의 글-재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