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엮은 기억의 파편, 그리고 자유, 황아람 특별초대전 ‘유연한 조각들의 합’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비채아트뮤지엄에서는 2025년 6월 12일부터 7월 4일까지 황아람 도예작가의 특별초대전 ‘유연한 조각들의 합’이 펼쳐지고 있다. 이 전시는 단순한 도자기 전시를 넘어, 흙과 기억, 공예와 조형의 경계를 넘나드는 입체적 언어를 통해 현대 도예의 새로운 미학을 제안한다.
황아람 작가의 작품 세계는 도자기 합(盒)의 구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히 용기의 기능을 넘어선다. 그는 “조각보를 잇듯이 여러 점토 조각을 연결해 하나의 합을 만든다”며, 그 안에 자신의 성정과 기억, 가족의 흔적, 삶의 조각들을 담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전통과 현대, 기능과 조형을 잇는 ‘합(盒)’의 언어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대표작 ‘조각보 그릇’, ‘틈새의 그릇’, ‘mimic bag 시리즈’, ‘조각보 고리’ 등 5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모든 작품은 흙을 가늘고 길게 뽑아 바구니처럼 엮은 독특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손끝에서 빚어진 얇은 선들은 서로 얽히고 맞물리며 조형미를 이루고, 그 안에 흐르는 유약의 질감과 광택은 마치 도자기와 섬유, 회화의 경계를 허문 듯한 감각을 준다.
이번 전시의 제목 ‘유연한 조각들의 합’은 곧 작가가 추구하는 조형적 해방의 선언과도 같다. 과거의 작품이 구조적 완결성과 안정성을 전제로 했다면, 이번 신작들은 “형태의 마감에서 일부러 벗어나 보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자유롭게 휘고 일그러진 채 공간을 확장한다.
작가노트에 따르면 “해체되고, 마감되지 못한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발상이 이번 작업의 핵심이다. 마치 삶의 기억들이 정확히 맞물려 떨어지지 않듯, 형태의 불완전성이 오히려 인간적인 서사를 말해주는 셈이다.
6월 12일 오후 5시에 열린 개막식에서는 이유리, 오하정 큐레이터의 사회, 가수 김채우와 김강석 대표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심윤경 이사, 서정림 전 성남문화재단 대표의 축사, 그리고 황아람 작가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가수 김은경과 김채우의 즉흥적인 축하무대와 특별무대에서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시간을 연출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할 뿐 아니라 일부 조형물을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구성된 코너에서 작품의 질감을 느껴볼 수 있다. 이처럼 감각적인 교감의 확장은 도자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무는 실천이기도 하다.
인터뷰: “나를 엮듯, 흙을 엮어내는 작업입니다”
현장에서 진행된 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황아람 작가는 자신을 “흙을 엮어 도자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9년 일본 교토 도자기 회관에서의 개인전, 2021년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동상 수상 등 국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외할머니가 사용하던 대나무 바구니에서 받은 감동이 작업의 원점이 되었다”며, 조각을 엮어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그 과정이 “결국은 내면을 다듬는 시간”이라 밝혔다. 완벽함보다는 우연의 여백을 남기는 것을 중요시하며, “가마 속에서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형태조차도 내게는 예술적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작업 방향에 대해 “더 과감한 표현과 자유로운 설치작업에 도전하고 싶다”며 “언젠가는 내가 사는 마을의 흙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황아람의 작업은 단지 미학적이거나 기능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공예를 넘어선 입체 회화, 흙으로 말하는 감성이며, 그것은 개인의 기억과 감성, 유년의 온기, 여성성과 모성의 상징까지 다양한 감정과 상징이 흙 속에 중첩되어 녹아들어 있다.
흙, 물, 불, 공기로 빚어낸 유연한 조각들. 그것은 단단함이 아니라 ‘틈’ 속의 숨결로 말하고, 기능이 아니라 ‘형태의 감성’으로 응답한다. 이번 전시는 단지 도자기전이 아니라, 삶의 기억을 엮어낸 한 편의 시와 같은 조형적 서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