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202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준비한 지역작가초대전은 남도의 자연과 기억, 그리고 전통의 아름다움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특별한 무대다.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광주에서 활동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5관에서 4월 4일부터 7월 6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디지털 산수, 그 너머의 기억
'이이남의 산수극장'은 전통 산수화의 형식과 풍경에 현대 디지털 기법을 접목해온 작가의 미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전시다. 작가는 병풍산, 영산강, 그리고 담양의 소소한 자연과 고향의 기억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예술적 뿌리를 되짚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지털 화면 위에 움직이는 시와 소리,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특히 담양의 병풍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어린 시절 뒷산을 오르던 기억, 가족과 함께 걷던 강가의 바람을 떠올리게 한다. 이이남의 작업은 고전 서화 속 정적인 산수에서 벗어나, 그 안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던 장면이 순간순간 변화하며, 관객은 그 안에 머물다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전시 제목인 '산수극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기억을 공유하는 감성의 장이다.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낯선 관람객들이 마치 공연장에서 나란히 앉아 삶의 한 장면을 공감하듯, 자연과 고향을 소재로 한 디지털 산수 앞에서 따뜻한 감정을 공유하길 바란다.
전시장 곳곳에는 전통 회화의 화면이 디지털로 확장되어 펼쳐지고, 시청각적 요소가 더해져 극장처럼 감각을 사로잡는다.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 고전 시구의 자막이 영상에 입혀지며 산수극장의 공간은 단순한 미술 전시를 넘어선 하나의 ‘체험’으로 변모한다.
이이남 작가는 그간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 무대에서 한국 전통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주목받아왔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세계를 다시 지역으로 환원시키며, 고향이라는 정서를 통한 보편성과 향토성을 함께 담는다. 지역 작가를 초대하는 ACC의 취지와도 맞물리며, 전라남도 예술의 자연친화적 서정성과 디지털 기술의 조화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도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전통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람자 개인의 기억이 함께 피어난다. '이이남의 산수극장'은 고향의 풍경이 단지 과거의 회상이 아닌, 지금-여기의 예술적 언어로 새롭게 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