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 인터뷰] “딸의 그림 속 엄마, 기억을 걷다”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
“엄마의 마지막 초상화, 그림으로 기록한 사랑”
“치매 어머니와의 약속, 그림으로 지켜낸 딸의 이야기”

 

[아트코리아방송 김한정 기자] 2025년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사아트 1층과 지하 1층에서 열리고 있는 손미량 작가의 제15회 개인전 ‘엄마이야기’는 단순한 인물화 전시를 넘어선 하나의 문학적 서사다. ‘어머니’라는 단일한 존재에 대한 응시는 곧 우리 모두가 품은 가족의 기억과 감정에 관한 성찰로 확장된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이번 전시는 병중의 노모를 중심으로 한 회화 연작으로, 작가는 딸로서, 화가로서 모순된 감정과 삶의 궤적을 화폭에 담았다. 손미량 작가와의 인터뷰, 어머니의 소감, 그리고 신항섭 미술평론가의 평론을 종합하여 이 전시가 담고 있는 의미의 깊이를 되짚어 본다.

“엄마와 함께 전시를 하자는 약속, 이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미량 작가는 2년 전부터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을 준비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작가에게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건네받아 짧은 시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치매 증세가 악화되며 더는 붓을 들 수 없는 상황. 작가는 그 안타까움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오랜 고마움과 빚을 갚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화실 운영과 가사, 작가로서의 작업을 병행하는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그는 어머니의 삶을 ‘화폭’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해내는 데 집중했다. 그의 붓끝에는 후회와 사랑, 연민과 슬픔이 뒤섞인 고백이 담겨 있다.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지하 전시실에 설치된 100호 대작이다. 부산의 바닷가 근처,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계단을 내려가는 어머니의 뒷모습, 인생 같았다"고 표현한 그의 그림은 단순한 일상 장면을 넘어 ‘한 생의 고비’를 은유한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어머니가 부축보다 벽을 짚고 내려오는 게 편하다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인생을 한 계단씩 내려오는 느낌이었죠.”
작가는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구성했으며, 흐릿한 빛과 무거운 톤, 번지는 선들로 현실의 아픔과 기억의 몽롱함을 함께 그려냈다.

신항섭 평론가의 시선-“내 어머니에서, 우리 어머니로”
“그림이란 결국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림 속 어머니도 더 이상 ‘내’ 어머니가 아니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손미량 작가의 ‘엄마이야기’가 단순한 사적 헌사가 아닌, 존재의 보편적 물음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라 평가했다. 그의 회화는 전형적인 인물화의 묘사에서 벗어나, 모호한 경계와 감정을 억누른 채 그려진 구도를 통해 ‘노쇠’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주제를 사유하게 만든다.

“그는 외적인 형태미를 상당 부분 포기한 대신, 내면의 심미를 택했다. 모호한 표현과 감정을 품은 구도는 단지 한 사람의 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삶을 응시하는 태도다.”

실제로 화면 속 어머니는 앉거나 누워 있거나, 벽을 짚고 선 모습 등 제한된 공간에 머무른다. 삶의 마지막 장면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작가 스스로의 감정 또한 객관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엄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딸이 시작한 손미량 작가의 ‘엄마 이야기’”-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봄 34.5×24cm creyongonpaper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봄 34.5×24cm creyongonpaper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봄꽃 34.5×24cm creyongonpaper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봄꽃 34.5×24cm creyongonpaper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일편단심 난초 34.5×24cm creyongonpaper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일편단심 난초 34.5×24cm creyongonpaper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친구가 없는 커피잔 34.5×24cm  2020-사진 김한정 기자
김영자-친구가 없는 커피잔 34.5×24cm  2020-사진 김한정 기자

어머니의 소감-“나는 그냥 바람 쐬러 왔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전시장을 찾은 어머니는 담담하면서도 벅찬 소감을 전했다.
“이렇게 크게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그냥 딸이 바람 쐰다고 해서 왔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나는 그냥 그리기를 좋아했을 뿐인데, 그게 딸에게 내려갔네요.”

어머니는 딸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묵묵히 버팀목이 되었고, 때로는 억척스러운 생활인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 엄한 사랑이 이제 와서야 제대로 조명받는 순간이다.

바다앞에서 162.2x130.3cm Oilon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바다앞에서 162.2x130.3cm Oilon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봄,봄 72.7x53.0cm Oilon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봄,봄 72.7x53.0cm Oilon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1980년 가족사진속 엄마 162.2×130.3cm oil on canvas 2019-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1980년 가족사진속 엄마 162.2×130.3cm oil on canvas 2019-사진 김한정 기자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큰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말한다.
“이제는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 연구해온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해보고 싶어요. 인물에서 확장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에게 그림이란, 단지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되새기고, 잊힌 감정을 다시 꺼내 안아보는 행위다. ‘엄마이야기’는 그 과정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전시이자, 예술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손미량-계단을 내려오는 엄마 90.9×72.7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계단을 내려오는 엄마 90.9×72.7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바다, 바다 162.2×130.3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바다, 바다 162.2×130.3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아가씨 시절 72.7×60.6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아가씨 시절 72.7×60.6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이 전시는 하나의 ‘기억 미술관’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구나의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 그림을 보는 일이란 결국 마음을 다시 꺼내 안아보는 일이 아닐까.

손미량-아파트 담벼락 앞 162.2×130.3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아파트 담벼락 앞 162.2×130.3cm oil on canvas 2025-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엄마이야기17 27.3×22cm oil on canvas 2023-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엄마이야기17 27.3×22cm oil on canvas 2023-사진 김한정 기자

 

손미량 작가
동아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 석사
제15회 개인전, 국내외 단체전 200여 회 참여
일본 일전(NITTEN), 하쿠지츠 회 수상 다수
한국미술협회, 창작미협 회원
‘손미량 아뜨리에’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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