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 미학산책] 장식론 Ⅲ
장식의 길이란 전술을 통해 장식의 의지가 순수하게 형에서 만들어지는 길을 가리킨다. 이 길에 있어서는 미가 존재할 형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부에서 생긴다. 내면의 미 또는 관념의 어떤 느낌이 곧 형으로 나타난다.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면 조형의 비판에 의해 나타난다.
내면의 무형적인 관념에 있어서의 선·형·색, 이것이 ‘내면의 미’의 구상화이다. 조형의 본능은 미와 관계없이 사람에게 주지만, 인간은 형을 형성하는 동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꾸준히 형을 만든다. 그 형을 비판하는 것이 미술이다. 자연의 형태를 비롯한 조형의 비판이 사실이라면, 자연의 형을 그리지 않고 단지 형성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순수한 장식이다.
즉, 조 형이 장식과 일치하는 경우에 내면의 미가 직접적으로 생기는 느낌의 이유가 있다. 따라서 가장 순수한 장식의 길은 장식미술이다. 이것은 대부분 형을 만드는 장식적 긍정이기 때문에, 기물의 외선이나 색, 건축의 미적 외견, 정원 등이며 이것은 손으로 만들어지면서 내면의 미가 일치한 미에 의해 이뤄지는 조형이다. 그러나 조형은 또한 모방의 본능이 있다. 보는 것, 듣는 것을 모방하고 싶은 충동 때문에 조형해 보고 싶은 것이다. 또는 조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방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떼어 놓을 수 없다.
여기에서 본 기억을 더듬거나 상상으로 물체를 형성하는 것이 시작된다. 그 기억의 조형을 내면의 미가 비판하는 경우 장식에 있어서의 상상 또는 기억의 길이 생긴다. 이 상상 및 기억 중, 상상은 자연의 형을 미로 한 것이 아니라 상상에 의해 일어나는 자연의 형을 미로 한 것이며, 자연의 형을 미로 하는 사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지만, 기억은 어느 정도 자연의 형을 미로 생각하는 조형의 동기가 일어난다. 즉, 무엇인가 미를 보면서 그것에서 느낀 것을 모방해 보는 것이며 여기에서 사실의 길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그 동기는 자연의 미에 있어서도 그것이 형성될 때는 역시 장식감을 살리는 길을 맡기 때문이다. 기억은 역시 상상을 가하지 않으면 확립할 수 없다. 상상은 순수한 장식적 미감에 따르지 않으면 미로서의 형을 가질 수 없다. 상상과 장식적 리듬은 내면에서 유기적으로 일치해서 만드는 것이다. 내면의 무형의 관념 또는 미와 일상생활의 경험이 하나가 되어 일종의 무형인 내적 분위기가 몽환을 일으키고, 아름다운 형을 희미하게 상상을 일으키지만 역시 내면의 무형미의 감각적 의식이며, 그것이 자연물의 형을 상상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내면의 미적 감각 의식은 일종의 리듬을 만든다. 여기에 형의 상상이 가해질 때 상상과 장식과의 유기적인 일치가 있다. 기억에 의해 자연의 미를 형성하려고 하는 길도, 결국 조형에 있어서는 상상의 도움을 요한다. 그러나 기억에 의해 생각해내는 미에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미의 감명도 있다. 이 길의 미는 자연의 형에 입각한 미와 상상에 의해 일어나는 장식적 미의 융합이다. 이 경우의 자연의 미는 무엇이든 기억을 통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에 있어서 순수한 자연의 미와는 다르다.
이 기억을 통한 장식의 길은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장식적 리듬이나 상상이 주조(主調)이지만, 사실의 길은 조금씩 조금씩 진행한 것으로써 기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미를 묘사하는데 이르러 처음으로 질의 미가 생기면서 순수한 사실의 길이 열린다. 이 최후의 기억에 의한 장식의 길을 사실적 장식의 길, 또는 장식의 길에 있어서의 사실적 영역이라고 말하게 된다. 따라서 장식의 길은 순수한 표시인 장식미술을 들여다보면서 상상의 힘을 빌린다. 그러므로 장식의 길은 한편 상상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