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에 생명을 불어넣은 바로크 조각의 거장

바로크의 천재예술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예술적 생애

1598년 12월 7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한 어린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예술사에서 ‘바로크’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 그가 바로 이 소년이었다. 베르니니는 평범한 조각가는 아니었다. 그는 조각, 회화, 건축을 아우르며 인간의 감정과 신앙, 공간적 감각까지도 예술언어로 번역한 바로크의 총체였다.

 

천재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젊은 시절의  베르니니 자화상
젊은 시절의  베르니니 자화상

잔 로렌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는 당대 유명 조각가였다.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작업장을 놀이터 삼아 대리석 먼지를 마시며 자랐다. 피에트로는 아들의 손재주를 일찍이 알아보고,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일화에 따르면, 로마에 정착한 어린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방문해 "이곳을 내가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한것으로 전해진다. 훗날 그는 실제로 그 약속을 실현한다.

그의 비범한 재능은 곧 교황청의 눈에 띄었다. 교황 바오로 5세는 베르니니를 불러들였고, 이후 연이은 여러 교황들의 후원을 받으며 그는 로마 교황청의 ‘전속 예술가’처럼 활동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을 대리석에 새기다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다비드/1623년–1624년/170cm/로마 보르 게세 미술관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다비드/1623년–1624년/170cm/로마 보르 게세 미술관

베르니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비드'는 고요한 결연함의 미켈란젤로 버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영웅이 물매를 던지기 직전, 그 찰나의 역동성과 집중된 감정을 한 덩이의 대리석에 불어넣었다.  베르니니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며 조각했다. 이 복잡한 표정과 몸의 비틀림을 생생하게 포착하기 위해, 베르니니는 직접 거울 앞에서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했고, 그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조각을 완성했다. 기록에 따르면, 교황 바르베리니(훗날 교황 우르바노 8세)가 그의 표정을 직접 보며 "이야, 천재는 스스로 모델이 되는구나!"라고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아폴로와 다프네,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 베르니니

'아폴로와 다프네'에서는 나뭇가지로 변해가는 여인의 몸, 그녀의 공포 어린 눈빛과 아폴로의 절망까지 표현하며, 조각이 더 이상 정지된 예술이 아님을 선언했다.그의 손끝에서 대리석은 살아 움직였다. 아폴로와 다프네 제작 중에도 긴박한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다프네가 나무로 변해가는 섬세한 디테일을 표현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다. 베르니니는 대리석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극도의 기술을 요하는 부분—얇은 손가락이 가지로 변하는 장면—을 제자 안드레아 볼피노(Andrea Bolgi)와 함께 다듬었다. 하지만 최종 표현은 베르니니 본인이 직접 손질했으며, 완성 직후, 후원자였던 추기경 스키피오네 보르게세는 이 조각을 보고 "마치 대리석이 숨을 쉬는 것 같다"며 감격했다고 한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청년 시절 걸작들인 '프로세르피나의 납치'와'성 테레사의 환희'는 단순한 기술력 이상의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조각의 정점에서, 베르니니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비물질을 물질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베르니니는 후기 작품에서도 조각을 넘어선 연출력을 선보였다. '복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의 환희'를 제작할 때 그는 단순히 대리석을 깎는 데 그치지 않고, 조각이 설치될 공간과 창문의 위치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복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Beata Ludovica Albertoni), 1671년–1674년, 대리석, 실물크기이상, 로마 산 프란체스코 아리파 교회 -베르니니는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의도적으로 자연광과 감정의 흐름을 조율했다.-
복녀 루도비카 알베르토니(Beata Ludovica Albertoni), 1671년–1674년, 대리석, 실물크기이상, 로마 산 프란체스코 아리파 교회 -베르니니는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의도적으로 자연광과 감정의 흐름을 조율했다.-

루도비카의 고양된 표정 위로 자연광이 부드럽게 쏟아지도록 설계함으로써, 조각과 빛, 공간, 시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극적 체험을 완성한 것이다. 당시 로마 시민들은 햇살이 조각을 가장 아름답게 감싸는 시간대를 맞춰 교회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베르니니는 대리석뿐 아니라 순간의 빛조차 조형한, 진정한 바로크 예술가였다.

 

공간을 연출하는 마에스트로

조각뿐 아니라 베르니니의 또 다른 정점은 건축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다키노(Baldacchino)는 제단 위에 세워진 거대한 청동 캐노피 구조물로, 신성과 장엄함을 극대화한 바로크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구조물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방문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감정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연출’했다.

성 베드로 광장의 타원형 회랑도 마찬가지다. 

성 베드로 광장과 대성전
성 베드로 광장과 대성전

수천 명이 몰려드는 광장에서 중심축을 자연스럽게 대성당으로 향하게 만든 그의 설계는 종교적 권위와 예술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예술과 신앙, 그리고 유산

1665년 베르니니, 바치차 그림.
1665년 베르니니, 바치차 그림.

 1680년,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베르니니는 생전에 이미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겨졌다. 그의 유해는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묻혔으며, 그의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유럽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바로크의 본질’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이후 논란의 여지없이 최고의 기량을 갖춘 조각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1세기의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한명의 예술가가 조각부터, 건축에 이르도록 이토록 완벽한 예술을 남길수 있었을까? 그의 생애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닌 예술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 움직이는 교과서다.

 

형태에 감정을 새긴 베르니니의 손길을 지나,  다음 편에서는 고뇌와 사유를 조각한 로댕의 세계로 발을 옮깁니다.

 

에필로그

강민수작가 - 홍대조소과졸 ,  홍대교육학석사.조각가,조각전문칼럼리스트
강민수작가 - 홍대조소과졸 ,  홍대교육학석사.조각가,조각전문칼럼리스트

    “조각은 생명을 훔친 돌이다.”

         –   콘스탄틴 브랑쿠시  

   강민수의 '파르락시스'는 조각가와 예술을 통해 형상의 진동을 읽어내는 저널입니다. 이 코너는 조각가의 생애와 시대, 그리고 그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망하며, 대중과 전문가의 눈으로 조각 예술의 본질과 의미를 탐색합니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