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정 미술전문기자 기획취재
[아트코리아방송 김한정 기자] 2025년 봄, 인사동 라메르갤러리 2관에서 열린 '화가들의 시대정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적 선언이었다. 전시가 개막한 4월 초,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정치적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둔 시점, 7인의 작가가 '시대를 그리는 예술'을 감행했다. 전시는 일시적 시국 전시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예술, 표현과 침묵 사이의 균열을 드러내며 미술의 시대적 감수성을 시험했다.
남궁원 작가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단순한 ‘찬반’의 이분법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이 전시를 "예술가가 시대 앞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이라 말한다. 참여 작가들은 찬성과 반대를 떠나 ‘지금’이라는 현실 속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그림이 아닌, 시대를 응시하는 예술의 태도에 관한 성찰이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은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예술이 시대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철석의 극사실주의 신문 회화는 언론의 편향성을, 정복수의 절단된 손가락 이미지는 권력의 폭력성과 통제를 상징한다. 황인혜의 의인화된 한국화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며, 정철교의 ‘핏줄 회화’는 국가 권력의 에너지 흐름과 내부 붕괴를 동시에 시사한다.
남궁원 작가는 “화가는 시대정신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미술계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때로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취한다. 과거 민중미술이 시대의 전면에 섰던 1980~90년대와 달리, 오늘날의 예술계는 정치적 발언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박명인 평론가 역시 “예술은 정치에 너무 깊이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하지만, 예술이 '현실의 균열'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 전시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중립성과 예술적 자유의 경계에서, 화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편향을 뛰어넘는가? '화가들의 시대정신'은 그 갈등의 현장을 시각화한 기록이자, 침묵하지 않은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 전시는 일회성 시국 전시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 하나하나가 남긴 시각적 언어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품은 혼란, 분열, 불안, 열망, 그리고 절망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박성남 작가가 그린 아리랑과 하모니카, 신제남 작가의 "문명의 딜레마" 시리즈는 과거와 현재, 전쟁과 평화, 이념과 민중 사이의 복합적인 감정을 압축한다.
그림은 고발이 아니다. 선언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이 된다. 그리고 질문이 남아야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화가들의 시대정신'전 - 전문가 시선
박명인 미술평론가
박명인 평론가는 '화가들의 시대정신'전에 대해 “예술가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통적 예술론의 관점에서 시작하며, 그러나 예외적인 시대, 예외적인 사건 앞에서 예술은 일시적으로 진실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예로 들며, 예술이 역사적 격변기에 강렬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대변하거나 편향된 표현에 고착되는 것을 경계하며, “작품이 정치적 논쟁의 연장선이 아닌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가들이 시대의 균열을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시각과 언어로 시각화하려는 의지 자체가 예술의 역할을 되살렸다”고 평가하며, 이를 통해 미술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사회적 토론의 장을 넓혀가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전시는 단순한 정치적 반응이 아닌, 혼돈의 시대를 기록하려는 예술적 양심의 표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다.
김종수 서양화가
김종수 작가는 본 전시가 가진 시대적 적시성과 작가들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도 정파 싸움에 국민이 희생됐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며, 정치적 상황을 미술이 직시한 용기 있는 시도로 보았다.
작가들의 표현이 양분화되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곧 “국민이 느끼는 감정의 다양성을 반영한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동시대 미술의 진정한 소통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김 작가는 이 전시가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시리즈로 확장되기를 바란다며, 화가들이 개인적 감성의 범위를 넘어 공적 영역에서 사회를 반영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작가들의 감정과 판단이 작품으로 표현되어 국민의 감정과 마주하는 장이 필요하다”며, 예술의 사회 참여적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화가들의 시대정신' 7인 작가별 작품 해석 및 시각 분석
1. 정복수-시대의 상처를 고발하는 ‘절단된 초상’
정복수 작가의 작품은 강렬한 붉은 배경과 함께 드러난 신체 일부의 결손(잘린 손가락 등), 왕관 형상의 이미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인물의 묘사가 아니라, 권력의 폭력성과 인간 존재의 파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손가락은 권위 또는 선택의 도구를 의미할 수 있는데, 그것의 절단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상실을 암시한다. 왕관은 지도자를 상징하지만, 그 위에 드리운 불길한 색채는 정치적 권력의 퇴색된 정당성과 위협성을 시사한다.
2. 신제남-우화적 구성으로 풀어낸 ‘문명의 딜레마’
신제남 작가는 권력과 지배, 인간의 무지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은유로 풀어냈다. 등장인물은 현실 정치인의 캐릭터를 빗대고 있으며, 좌우에 배치된 구성은 사회의 양극화를 상징한다. 노래하는 가수의 이미지는 대중의 감성을 자극해 정치를 소비하는 문화 현상으로 전환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한다. 작품 전반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연출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관객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참여자'로 존재하게 된다.
3. 정철교-강렬한 붉은 선으로 그려낸 ‘감정의 혈류’
정철교 작가의 그림은 마치 핏줄처럼 얽히고 설킨 붉은 선들로 화면을 채우며, 그 뒤편에는 원자력 발전소 풍경이 묘사된다. 에너지와 생명, 국가와 생존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한 화면에 배치한 점에서, 이 작품은 개인의 정서와 국가 시스템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원자력이라는 기계문명이 인간의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다는 시각적 은유가 매우 인상적이며, 생명력과 위협이 동시에 감도는 화면이다.
4. 장철석-신문 이미지를 활용한 ‘사실의 해체’
장철석 작가는 극사실적 기법으로 신문 이미지를 재현하고, 거기에 자신의 회화적 상상력을 덧입혔다. 이는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정보가 어떻게 개인의 사유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미지의 사실성과 그 위에 겹쳐진 상상력은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의 다층성을 상징한다. 언론 보도의 신뢰성과 편향성을 비판하며,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5. 박성남-한지와 입체 표현으로 되살린 ‘아리랑 정신’
박성남 작가는 전통 한지를 활용하여 '아리랑'이라는 민족적 정서를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종이의 결을 살린 평면과 반입체의 융합은 한국의 민속성과 현대적 조형성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제공한다. 특히 분단, 투쟁, 해방 등의 역사적 기억이 아리랑의 선율과 함께 시각적으로 환기되며, 보편적인 민족 감정과 정치적 분노가 섬세하게 교차한다.
6. 황인혜-의인화된 민중과 민족의 초상
황인혜 작가는 한글을 활용한 추상 회화로 알려져 있으나, 본 전시에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의인화된 인물들로 구체화시켰다. 화면 속 인물은 온화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유한 사랑'이라는 구절로 역설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다문화, 외교, 혜택, 퍼주기 등 현 시대의 복잡한 담론을 감성적인 인물화를 통해 드러내며, 아름다움 속에 내재된 긴장과 분노를 포착한다.
7. 남궁원-자연과 인간, 혼돈과 질서의 상생적 도식
남궁원 작가의 작품은 추상과 구상이 혼재된 풍경 구도 안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균열과 치유를 상징화한다. 푸른 색조의 강은 현실 정치의 흐름을 암시하며, 이를 건너는 다리나 선형 구도는 사회의 화합과 통합의 염원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는 평온하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시대적 갈등과 작가의 사색이 자리한다. '갈등을 건너는 미학'이 바로 그의 회화적 제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