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항금리 가는 길'의 만남-김인옥 작가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인옥 작가의 기본적인 작품세계는 <기다림>에서 시작해서 <항금리 가는 길>로 요약된다.
이 모든 작품 시리즈의 풍경들은 시각적으로 포근하고 평안한 감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의 화폭에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흔들고 적셔주는 깊은 서정성과 격조가 묻어있다.
김인옥의 회화는 전형적인 동양화의 채색 작품으로 깊은 정신성을 요구하는 수묵화는 아니지만, 자연과 사람의 가장 인간다운 정신세계를 조용하게 품고 있다.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그리움으로 시작되는 초기 그의 작품세계는 그가 경험하고 바라본 자연을 구체적 풍경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김인옥 작가는 30여 회의 개인전을 통해서 우산, 꽃, 나비 등 자연과 오브제를 결합시킨 추상적인 화풍 이후 자연이라는 주제에 보다 깊은 애정을 가졌고, 이에 대한 주제를 안정적이고 조형적인 채색으로 추구해왔다.
작가는 자연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녹색 위주의 채색으로 구성미와 조형성을 갖춘 화면을 구축해왔다. 특히 이러한 화풍을 통해 같은 장소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다양하게, 또 풍부한 색채로 자신의 양식을 구체화했다. 이는 마치 데이비드 호크니가 동일한 장소의 풍경을 사계절로 다시 화폭에 담는 형식과 비슷하다.
<항금리 가는 길> 시리즈와 서정적인 정취로 자연을 가깝게 하는 <기다림> 연작 등은 이러한 형식에 도달한 작가의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난 특징적인 화풍이다.
전작을 통해서 그림을 보더라도 자연을 사랑하는 온화하고 친화적인 시선이 내재해 있다. 또한, 동양화만이 가질 수 있는 붓질에는 진실과 정신성이 묻어나며, 이것이 곧 김인옥 작가의 그림에 철학으로 완성된다.
김인옥 작가의 회화는 이러한 자연을 바라보는 내면의 부드러움과 여성적인 눈길이 중심을 이룬다. 이는 작가의 인간성과 회화가 맞닿아 있는 지점이라 볼 수 있다.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은 사실 커다란 숲 위에 덩그러니 집 한 채가 올려 있는 초현실적인 화풍의 인간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종종 그의 이야기는 환상적이거나 이상향의 세계에서부터 삶의 공간에서 묻어나는 자연의 생생한 마을 풍경의 진솔한 정겨움으로 그 매력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확실한 언어의 메시지와 녹색의 채색으로 가슴속에 새겨진 마음속 풍경을 길어 올린다.
그러기에 전체적으로 그의 자연 관찰과 표현은 주변과 조화롭고 정적이며 고요하다. 표현기법도 정적인 붓 터치에 자연을 사랑하는 내밀한 붓질로 충만해 있다.
그의 작품 중 특히 주목해볼 만한 것은 <브로콜리 시리즈>다. 작가의 세밀함과 부드러움과 소박한 시선이 어떻게 우리에게 동화 속의 나올 법한 하나의 커다란 나무로 표현 가능한지를 가장 회화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불과 하나의 채소를 가지고 말이다.
브로콜리에 함께 들어온 작은 인형 같은 집과 멀리 뒤로 보이는 기차 풍경, 이들이 빚어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환상과 꿈과 현실인가를 다시 한번 묻는다. 이러한 기쁨과 희망이 화폭을 감싸고 있다.
이것들이 모두 한군데 모여 그 풍경에서 벗어나 파노라마처럼 한없이 정겨운 이미지로 탄생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마치 산이 가로막히고 물이 끝나 길이 없을 듯하지만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이 피어 있는 사이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라는 옛 시인의 시구처럼 <항금리 가는 길>도 언제나 솜사탕처럼 예쁘고 푹신하다.
멀리 다소곳한 풍경이, 사람들 집이 있고 삶이 있는 그의 그림은 산과 풍경이 걸음에 따라 변하듯이 다채롭게 변화한다. 푸른색, 노란색, 핑크빛 나이면 흰 솜방망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배어나기도 한다.
김인옥 작가는 이러한 기본적인 화가의 관습을 익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무가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복잡한 풍경도 그에게는 필법의 기교가 충분히 걸러진 후에야 비로소 모필(毛筆)을 화선지에 옮기는 과정을 거친다. 그의 화폭 속에 계절과 풍경이 어우러져 사람들 마음을 시를 읽는 느낌으로 탄생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의 그림의 매력은 사실주의 화풍으로 전통적인 한국화를 현대적 양식의 풍경화로 연결시키는 구성과 채색의 힘으로 회화 표현에서 무한한 공간을 화면에 담아내는 여백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에서 그 가치가 탁월하다.
그뿐만 아니라 김인옥 작가의 이런 정적인 풍경들은 묘사의 세계를 넘어 양평 부근의 사계절 변화를 한없이 부드럽고 온정적인 필법으로 전통적인 채색을 계승하고 있다.
사적으로는 박생광, 천경자 작가에서 이숙자 작가로 이어지는 전통채색의 정신을 그는 이렇게 이어받고 있다. 그의 화풍을 시기적으로 요약하고 구분할 때 시골의 정서와 풍취가 가득한 초기의 화풍과 조형성이 훨씬 깊게 포함된 최근의 작품들은 세밀한 필선으로 감각적이며 서정성 있는 격조 있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전통채색의 가능성도 열어 보인다.
그 채색의 바탕에는 화려한 장식미보다 소박미가, 현란한 색채보다는 담백한 녹색의 단색 채색으로 자연의 기품있는 아름다움을 이야기로 끌어낸다.
근작들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자연 풍경을 서정적인 채색으로 전환하는 <항금리>의 풍경 이후 <브로콜리>는 분명 그에게 최고의 회화적 오브제이자 대상이며 서정적 이야기의 결정판으로 인식된다.
이처럼 그의 회화는 매일 오가는 삶의 풍경들 속에는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녹아있다.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고 있는 그의 화폭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봄에는 파릇파릇 생명의 나무와 꽃들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짙푸른 가로수와 산, 그리고 마을들이 소품처럼 등장한다. 가을에는 황금빛의 숲속에 나무들이 색을 불러 모으고, 겨울에는 눈 내린 평원에 우뚝 서 있는 흰색의 나무가 화면을 뒤덮는다.
그리하여 그 모든 환상적인 풍경이 빠짐없이 꼼꼼한 필치로 되살아나는 것이 김인옥 작가의 작품의 울림이며 우리를 그의 그림에 빠져들게 하는 진정한 회화적 가치다.
집요하게 자연의 서정적인 풍경을 전통적인 채색으로 한결같이 담아온 그는 최근 그 서정의 세계에 깊은 조형성을 <브로콜리>와 꽃송이로 담아내는 작업에서 그 완결미에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를 보듯이 초현실적으로 회화적 세련미를 작가는 풍경의 단순화로 채색화의 본질은 물론 조형성과 형태미로 회화의 가치를 증명시켜준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