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우 작가 '그림은 나의 구원이었다'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제주돌문화공원 갤러리 누보(대표 송정희)에서는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귀포 출신 작가 고영우의 대규모 회고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고영우 작가의 45년에 걸친 예술 인생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로, 크레파스 초기작부터 유화 인물 군상 최신작까지 50여 점이 소개된다.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는 “어두움을 그리며 선한 것을 찾는 여정”을 평생 화두로 삼아왔다. 인간의 불안, 상실, 고립을 직면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아온 그의 작업은 예술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사유와 정직한 고백이다.

전시 제목 ‘환상에 대한 환상’은 환상을 현실로 마주하고, 그 틈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을 담는다. 그의 세계에서 환상은 허위가 아니라, 현실의 어두움을 통과해 도달하는 내면의 거울이다.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특히 주목할 작품군은 1970~90년대 크레파스 작업이다. 아이들의 그림 도구로 여겨지는 크레파스를 실험적 매체로 승화시킨 고영우는 “덧칠하고, 지우고, 칼로 긁어내며 선의 예리함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초기 크레파스 작업은 감정을 덮고, 드러내고, 숨기는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 풍경을 해부하는 작업이자 동시에 드로잉의 시작점이었다.

1990년대 이후 그의 화풍은 급격한 전환을 맞는다. 모노톤으로 단순화된 인물 군상 시리즈는 형상보다는 실루엣, 감정보다는 고요한 에너지로 존재의 무게를 표현한다. 그는 “슬픔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이며, 극히 아름다운 감정”이라 말하며, 그 감정을 통해 존재의 어두움을 탐색하고 선함을 발견하고자 한다.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의 삶은 곧 작업이었다. 공황장애로 인해 서귀포의 ‘솔동산’ 일대 반경 5km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온 그는, 60년 동안 제주 시내를 방문한 적조차 없다. 그러나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그는 무한한 인간 내면의 심리 지형을 화폭으로 확장시켜 왔다.

‘너의 어두움’ 시리즈는 그러한 작가의 고백과 같다.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어두움이 존재한다. 나는 어두움과 눈물을 그리며 인간의 선한 것을 찾는다.”

이 어두움은 인간을 위협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본질을 되묻는 통로이자 작가의 구원이기도 하다.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작가는 오랫동안 성당의 ‘종지기’로 알려져 있다. 40년 넘게 매일 저녁 6시, 그는 성당의 종을 친다. “그 행위는 병약한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생명에 대한 경배”라고 말한다.

그의 종소리는 곧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삶에 대한 예찬이자 고요한 저항이다.

고영우 작가의 예술적 기원은 아버지 故 고성진 화가로부터 이어진다. 일본 태평양미술학교 출신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고 작가에게 문학과 음악, 철학의 깊이를 전해주었다.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 작가는 “굶어 죽더라도 싸구려 그림은 그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팔리는 그림보다 존재를 묻는 그림, 인간을 사유하는 그림에 몰두해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를 사랑하는 10여 명 이상의 소장자들이 작품을 기꺼이 출품해 이루어졌다. 갤러리 누보 송정희 대표는 “작품을 소장하게 된 사연과 작가에 대한 애정을 나누며 준비한 시간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고 말한다. 향후에는 고영우 작가에 대한 체계적인 아카이빙 작업과 도록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전시 기간 중에는 ‘소장자와의 대화’, 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관람은 무료이며, 제주돌문화공원 입장료만 별도로 지불하면 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 개인전 'Layers of Fantasy_환상에 대한 환상'

고영우의 그림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의 연약함과 불안, 모호함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끝내 선함과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하는 여정의 출발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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