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으로 피워낸 기억의 정원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디지털 이미지가 일상이 된 시대에, 여전히 암실에서 흑백 필름을 현상하며 삶의 온기를 기록하는 사진작가가 있다. 오는 4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제2전시실에서 열리는 '홍상현 사진전 노마드 가든(The Nomad Garden)'은 그런 아날로그의 감성과 따뜻한 시선을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이자 20여 년간 암실작업을 고수해온 홍상현은 이번 전시에서 직접 현상·인화한 아날로그 흑백 필름 사진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작가의 어머니가 일구어낸 작은 정원에서 피어난 꽃들을 담고 있으며, 그 안에는 단순한 자연의 미를 넘어선 삶의 기억과 보편적 인간애가 조용히 깃들어 있다.
홍상현 작가는 작품마다 ‘꽃의 표정’을 인물사진처럼 담아냈다. 길가에 쓰러져 있던 야생화들조차 정성스레 옮겨 심고, 이름조차 모르는 꽃에게도 감사 인사를 건네던 어머니의 손길은 작가의 렌즈를 통해 ‘하나의 존재로서의 꽃’을 마주하게 한다. 작가는 “그 꽃들의 표정 속에서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고 전한다.
작품들은 모두 어머니의 삶의 조각이자 한국 근현대사 속 수많은 여성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견뎌낸 수많은 ‘어머니’들의 삶은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정착과 이주를 반복했던 여정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그 여정을 ‘노마드 가든’이라는 제목으로 압축해, 고정되지 않은 장소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집요함과 따뜻한 정서를 이야기한다.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되며 주목받은 홍상현은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도 활동했으며, 현재까지도 디지털 시대에 잊혀져가는 암실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오늘날 콘텐츠 생산과 소비가 디지털 환경 위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홍 작가의 필름 사진은 오히려 신세대 관객들에게 더 ‘신선한 감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20~30대 사이에서 구형 디지털카메라, 필름, LP 등 아날로그 미디어에 대한 향수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미술시장 또한 다시금 아날로그 매체에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시대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기억과 정서를 담는 매체로서의 사진 예술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이번 전시를 앞서 홍상현 작가는 지난 3월 12일부터 23일까지 토포하우스 대구에서 동일 전시를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으며, 서울 인사동 전시는 더욱 많은 관람객과 미술 애호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 꽃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 얼굴들이 다시 피어나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죠.”
작가의 어머니가 건넨 이 말처럼, 《노마드 가든》은 삶의 순간순간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조용한 헌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