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최근 AI 분석을 통해 루벤스의 작품으로 추정되던 ‘다이애나의 목욕’(약 1635년)의 진위 여부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루벤스의 잃어버린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스위스 AI 인증 회사 Art Recognition이 일부 영역에서 루벤스의 손길이 닿았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논란이 증폭되었다. 그러나 루벤스 전문가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AI 인증의 신뢰성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스위스 기술 스타트업 Art Recognition은 최근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Art Business Conference에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AI 분석에서는 29개 패치를 검사한 결과-
10개 패치는 80% 이상의 확률로 루벤스의 진품으로 판별됨.
8개 패치는 60~80% 사이의 낮은 확률을 기록.
7개 패치는 판단이 모호.
4개 패치는 위조로 판정되었으며, 이 중 하나는 작품의 중심 인물인 다이애나의 얼굴을 포함.
이러한 결과는 작품이 전적으로 루벤스가 그린 것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정확한 진위 여부를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분석은 해당 작품을 소유한 프랑스 수집가의 의뢰로 진행된 유료 연구였으며, Art Recognition은 현재까지 20개국 이상에서 500건 이상의 유사한 AI 기반 인증을 수행한 바 있다.
그러나 주요 루벤스 학자인 '닐스 뷔트너(Nils Büttner)'는 이 분석 결과에 강한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앤트워프의 Centrum Rubenianum 회장으로, 루벤스의 주요 연구 프로젝트인 ‘Corpus Rubenianum’을 진행 중이다.
뷔트너는 AI 기술을 활용한 인증 자체를 지지하지만, 이번 분석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6년 영국 미술사학자 '그레고리 마틴(Gregory Martin)'이 작성한 상태 보고서와 2023년 직접 자외선 검사를 통해 이 작품이 루벤스의 진품이 아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특히 '붉은색 캔버스 프라이머와 언더드로잉(밑그림)'이 루벤스의 작업 방식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림의 품질이 루벤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AI가 훈련된 데이터 세트가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AI 분석이 이루어진 2023년 당시 AI의 훈련 데이터 세트가 부족했을 수 있으며, 이후 데이터를 추가하여 AI가 재훈련되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뷔트너는 AI 인증이 더 신뢰성을 가지려면 더 포괄적이고 정확한 데이터 세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테르담 Boijmans Van Beuningen 박물관에 소장된 ‘다이애나의 목욕’ 단편이 AI 학습에 포함되었다면 보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단편은 루벤스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문가들이 신뢰하는 버전이다.
한편, 'Art Recognition의 CEO 카리나 포포비치(Karina Popovici)*'는 “AI 모델은 일반적으로 단일 이미지에 의해 결과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AI 인증 과정에서의 데이터 세트 구성과 분석 방식의 투명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AI 기반 인증의 신뢰성이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장에서는 AI 인증을 점차 도입하고 있다. Art Recognition은 이미 AI 인증을 통해 경매 시장에서 판매된 최초의 작품을 인증한 바 있다.
하지만 AI 기술이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분석 결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2021년 Art Recognition은 런던 국립 미술관이 소장한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가 위조품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또한 많은 학자들에게 반박을 당한 바 있다.
AI와 미술 시장의 접목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뢰성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번 논란을 통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이번 논쟁은 AI가 미술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AI 인증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정교한 분석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결국 예술 작품의 진위 여부는 AI가 아닌 인간 전문가들의 분석과 연구를 바탕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artnet naws 재구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