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윤년' 쿤스트할 로테르담에서 네덜란드 첫 대규모 개인전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네덜란드 '쿤스트할 로테르담Kunsthal Rotterdam'에서는 2025년 3월 1일(토) – 8월 31일(일)까지 국제갤러리 주최로 '양혜규-윤년Haegue Yang: Leap Year'이 전시되고 있다.
양혜규의 네덜란드 내 첫 번째 대규모 서베이 개인전 《양혜규: 윤년Haegue Yang: Leap Year》(이하 《윤년》)이 2025년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쿤스트할 로테르담Kunsthal Rotterdam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열렸던 런던 헤이워드 전시의 유럽 순회전으로, 설치, 조각, 영상, 텍스트, 음향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다면적이고 다학제적인 작업 70여 점을 건축으로 유명한 쿤스트할 공간에서 새로운 구성으로 선보인다. 지난 30년간 일상적인 사물과 산업용품 등을 활용해 감각을 일깨우고, 추상과 구상 사이의 경계 및 이분법적 사고를 허물어 온 작가의 작품세계가 다시금 총망라되어 현지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쿤스트할 로테르담은 로테르담의 뮤지엄파크Museumpark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으로, 1992년 개관 이후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미술기관으로 자리잡았다. 미술관 건물의 직선적 형태와 벽체 없이 개방감이 돋보이는 현대적 디자인은 로테르담에 본거지를 둔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것이다. 작가는 고전적인 비율의 대형 직사각형 전시장을 대각선으로 배치한 임시 벽체로 구획하여 광장과 복도, 그리고 다양한 작업을 담을 수 있는 크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윤년》은 사회, 정치, 영적 일상Spiritual Quotidian, 의사擬似-수행성Quasi-Performativity, 단일성-복수성Singular-Plural 등 작가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도적으로 연대기적 구성을 거부하는 대신 구획된 공간을 따라 관객들의 직관과 연상을 기반으로 유기적으로 관람하도록 이끈다. 신작 〈소리 나는 아치형 동아줄 – 금색 육각 경량Sonic Arch Rope – Gold Hexagon Light〉(2024)과 〈농담濃淡진 소리나는 물방울 – 수성 장막Sonic Droplets in Gradation – Water Veil〉(2024)을 시작으로 가장 안쪽 방에는 〈중간 유형 – 직조 가면 무도회The Intermediates – Dancing in Woven Masks〉(2015)와 〈중간 유형 – 탄소 맞은 수컷 칠발 이무기The Intermediate – Seven-Legged Carbonous Male Imoogi〉(2023)를 포함한 거대한 조각군이 미술관의 대형 유리창을 따라 관람객을 마주한다. 현대 작곡가 고(故) 윤이상의 삶과 음악에서 출발, 런던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대규모 설치작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2024)도 작품을 위해 구획된 독립된 방에 설치되었다.
아울러 전시는 다양한 문화권의 공예 및 전통 의례 등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주요 연작들도 선보인다. 유럽의 이교적 전통을 반영한 〈중간 유형The Intermediates〉(2015–), 비서구권의 민속 예술과 주술적 행위에 대한 연구에 기반한 〈황홀망恍惚網Mesmerizing Mesh〉(2021–)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양혜규의 조형 언어를 조망한다. 그중 〈중간 유형〉은 전통적인 직조 기법을 활용하는 반면 인공 짚으로 제작되는데, 작가는 의도적으로 인공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민속 전통의 회복력과 적응력, 그리고 생명력을 강조한다. 특히 해양 생물을 닮은 유기적 형태의 라탄 조각 〈엮는 중간 유형 – 이면의 외계 이인조The Randing Intermediates – Underbelly Alienage Duo〉(2020)는 필리핀 공예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 직조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인공 식물로 장식된 표면과 대조되는 작품에 달린 산업용 손잡이는 이동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비非-인간적 상징을 통해 삶을 구현하는 제의를 상기시킨다. 또한 〈황홀망〉 연작은 샤머니즘 의례에서 영적인 의미를 지니는 종이 무구를 주요 소재로 삼는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양혜규의 초기작 중 단연 주목할 만한 작업은 〈창고 피스Storage Piece〉(2004)다.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던 젊은 시절의 작가는 작업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히 없었고, 갈 데 없는 자신의 작품들을 상자와 크레이트 등에 담아 목재 팔레트 위에 쌓아 올려 조각적 설치 작업으로 탄생시켰다. 당시 작가가 직면했던 현실적 어려움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전 세계 각지의 이주작가들이 실제 마주하는 문제와 이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서사를 포괄하며, 처음 선보인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강렬한 통찰과 사회적 함의로 울림을 준다. 〈창고 피스〉의 이러한 주제의식에 깊은 공감을 표한 로테르담 출신의 작가 프리스 루스Pris Roos가 본 작품의 일부인 스크립트의 낭독을 맡았다.
한편 오는 6월 13일에는 미술관과 피트 즈와트 인스티튜트Piet Zwart Institute가 공동 주최한 양혜규의 아티스트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유럽의 주요 미술관과 협업한 양혜규의 전시 《윤년》은 2024년 10월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를 시작으로 쿤스트할 로테르담을 거쳐 오는 2025년 9월 27일부터 2026년 1월 10일까지 취리히의 미그로스 현대미술관Migros Museum für Gegenwartskunst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작가 소개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현재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2017년부터 모교인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교 슈테델슐레Die Staatliche 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 Städelschule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양혜규의 작품은 과학적 현상부터 사회정치적인 내러티브, 그리고 미술사를 아우르는 폭넓은 참조점을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와 문화적 전통을 결합, 다감각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산업용품과 노동집약적인 공예 기법 등 작가가 사용하는 이중적인dual 혹은 혼종적인hybrid 재료는 현대 사회의 대량생산, 고대 문명, 그리고 자연 현상 등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의외의 연결 지점을 도출한다.
작가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 도쿄 모리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한 기관과 사설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융성한 작업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양혜규는 이들 기관 이외에도 뉴욕 뉴뮤지엄(2010),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2012),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코펜하겐 국립미술관(2022),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2023), 겐트 현대미술관S.M.A.K.(2023) 등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과 프로젝트를 가졌다.
양혜규는 국제적인 규모의 비엔날레에도 활발하게 참가해왔다.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2009) 한국관의 초대 작가로 참여하였으며, 이외에도 카셀 도큐멘타 13(2012), 제9회 타이베이 비엔날레(2014), 제12회 샤르자 비엔날레(2015), 제21회 시드니 비엔날레(2018), 제16회 이스탄불 비엔날레(2019), 제7회 싱가포르 비엔날레(2022), 제3회 타일랜드 비엔날레(2023) 등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선보였으며, 최근에는 제3회 라호르 비엔날레(2024)에 참가했다.
현재 미국 댈러스 내셔 조각 센터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개인전을 진행 중인 양혜규는 오는 9월 미국 세인트 루이스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 St. Louis(CAM)에서의 첫 개인전 개최를 앞두고 있다. 전시는 작가의 최근 작품들과 더불어, 미술관의 건축 및 기관이 속한 지역의 식민지 시대 이전의 역사와 풍경에 대응하는 커미션 신작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오는 3월 15일부터는 홍콩 M+의 그룹전 《The Hong Kong Jockey Club Series: Picasso for Asia—A Conversation》에서 작가의 또다른 작업 〈토템 로봇〉(2010)을 만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