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 방송 = 유정원 기자] 유형주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갤러리 COSO에서 열린다 

전시는 2025년 3월 5일 ~ 3월 23일 까지 열리며,  첫 날 별도의 오프닝 행사(17~19시)가 있을 예정이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서문 - 고대웅

고요한 노래가 쌓이는 집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집’에 들어선다. ‘집’이라는 곳은 삶의 은밀한 이야기가 쌓이는 장소이기에 초대를 하는 이에게는 부담을, 초대받은 이에게는 설렘을 준다. 만약 서로에게 애정이 있다면 그 부담과 설렘의 부피는 심장박동 수에 따라 불어날 것이다. 작가 유형주는 어떤 ‘집’을 만들었을까. 초대된 이들에게 어떤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길래 이토록 긴장되고 번거로운 일을 하게 되었을까.나와 타인의 삶 경계가 되어주는 ‘집’은 어느 때는 쉼을 보장하는 휴식처가 되기도, 긴장을 유발하는수용소가 되기도 한다. ‘주인’이 어떤 이야기를 쌓아가느냐에 따라 때마다 다른 형상을 띠는 유기적인곳이다. 하얀 벽 안에 유형주가 만든 집에는 고요한 거울이 벽을 메운다. 사각형 거울엔 작가가 언젠가마주 했을 시간이 담겨 있다. 틀 안에 얼굴이 가득하다. 큰 눈망울, 부재한 입. 고요하고 한적한 공간이지만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 벽과 바닥, 천장을 타고 흐른다. 겹겹이 쌓인 눈망울이 흔들리며 저마다 입으로 다 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 안에 서있자니 천천히 질문들이 떠오른다. 흐르는 속삭임을 듣고 ‘나’에 대한 질문들이 수면 위로 천천히 무겁게 떠오른다.

 

나는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가.

나의 삶은 아름답게 끝날 수 있을까.

나의 시간은 계속될까.

나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가.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존재의 시작과 끝을 나는 인지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 어떻게 끝날까. 매스미디어를 통해 아름다운 죽음을 목격하곤 한다. 인생의 숙제를 마치고마주하는 끝. 과연 내가 원하는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 소수가 될 수 있을까.과분한 바람을 가지며 무기력한 죽음이 떠밀려 온다.나의 시간은 계속되는가. 차를 몰다 가끔 아찔한 순간을 마주한다. 과연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간 것일까. 아니면 나는 사고 맞이 했고, 이후 끊임없이 다른 현실 속에 있는 것일까. 알 방도가 없다. 위험과 상실, 아름다움과 경희로운 시간을 관통할 뿐이다.

나는 존재하는가. 수많은 종교인들이, 수행자들이, 철학가들이, 예술가들이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저 마주하고 들여다본다. 나의 존재, 나의 감정, 나의 기억, 나를구성하고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이 주고받은 상호작용을 인지하려 노력한다. 깊이깊이 지겹도록 마주한다. 그렇게 큰 눈으로 가득해진다.

작가 유형주는 미숙한 두 모습 사이에서 끊임없이 망설인다.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졌으며, 대한민국의의무를 다한 국민이다. 한 없이 발랄하게 주변 사람에게 웃음을 주지만, 계속 사랑받을 수 있을지를 깊숙하게 두려워한다. 어떤 모습이 ‘나’일까. 두렵고 망설인다. 사람을 대면하며 나오지 못하는 모습. 사람과 소통하며 하지 못하는 말. 공유의 통로 위에 올려놓지 못한 감정, 기억을 그려나간다.

세상은 때론 나를 한 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십자가처형의 근거가 되는 형상을 위한 세 가지 습작(Three Studies for Figures at base of Crucifixion) 」처럼 괴성을 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에게 내 마음에 쌓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소리치며 알릴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형주는 침묵을 선택했다. 내면의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조용히 있으라는외부의 힘 때문이었을까. 어느 쪽이었던, 어쩌면 둘 다였을지 모르겠지만. 고요한 감정이 그림이 되며아이러니한 전환이 벌어진다. 무기력은 새로운 힘이 되고, 침묵은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가된다. 낙상으로 무너졌던 다리는 다시 일어날 힘을 가진다. 강한 작용이 강한 반작용을 만든다.

자화상 속에 담긴 자신은 시각을 통해 관찰된 얼굴이 아닌 관념 속에서 발견한 형상이다. 다시 말해내가 인지한 ‘나의 존재’이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나에 대한 기록이며, 나와 연결된 동시대를 함께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나에 대한 질문을 기록하며 고통의 괴성과 환희의 함성을 집어삼킬 힘을 지켜왔을지 모르겠다. 침묵하지만, 지켜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법을 더듬더듬 찾아왔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바탕 하얀 방에 고요한 집들이가 열린다.

고요한 외침이 가득한 집에 들어선다. 얼굴을 본다. 눈을 마주한다. 한숨 고르고 나를 마주한다. 이제그가 초대해 준 집에서 나의 노래도 고요 속에 불러본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유형주 개인전: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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